닌자 어썰트, 남코와 세가의 잊힌 활극

2025. 6. 8. 12:58오락실 기판

타이틀이 뜨는 순간 두근.
폴리곤 다루는 솜씨는 당대 최고였던 세가에 뒤지지 않는다.
나오미 1 시스템이 아케이드 역사에서 가장 아름답고 진보한 시스템이었다고 생각한다. 상태는 전혀 아름답지 않음.
사이버 펑크 2025 in sokcho.

오락실 다녀 본 사람 중에서 건슈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 역시 건슈팅 게임을 좋아했다. 오퍼레이션 울프부터, 스틸건너를 거쳐 종국에 도달한 건슈팅은 세가의 더 하우스 오브 더 데드였다. 도트로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퍼포먼스를 스틸건너가 마지막으로 보여줬다면, 첫번째 하오데의 등장은 새로운 3d 폴리곤 시대를 개막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사실 세가의 모델 2라는 지금 보면 많이 부족한 스펙으로 만든 하오데가 여전히 컬트적인 인기를 얻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나는 하오데 1을 군대에서 친구 만나러 서울로 휴가 갔다가 강남 고속버스 지하상가에 있는 오락실에서 처음 발견했었다. 그때 근처의 지하상가에 있던 중국집에서 고량주와 탕수육을 진탕 때리고 그야말로 술에 절여진 좀비 상태로 하오데를 코인러시로 클리어했다.

사운드, 조작감, 게임 디자인 모두 당대 최고 수준의 게임이었다. 그리고 군 생활을 끝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우스 오브 더 데드의 속편이 나왔다. 사실 2에 대한 오락실에서의 기억은 별로 없다. 그러나 난 2를 정말 열심히 즐겼는데, 바로 드림캐스트 덕분이었다. 애초에 드림캐스트 건콘의 트리거가 연사에 취약한 물건이라 원코인은 꿈도 꾸지 못했지만, 이식하면서 추가해 준 미니 게임을 전부 클리어할 정도로 좋아했다.

2000년 초반 아케이드에서도 세가의 독주는 계속 됐는데, 그런 와중에 신박하게 나온 게임이 바로 이 닌자 어썰트였다. 당시 소니 진영의 퍼스트 파티로 활약하던 남코에서 라이벌 회사의 기판인 나오미로 건슈팅 게임을 냈던 것이다. 이것은 나중에 ps2 호환 아케이드 기판 시스템 246으로 세가에서 남코의 이름으로 뱀파이어 나이트를 개발해 줌으로써 모종의 계약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닌자 어썰트는 하오데 2를 벤치마킹한 게임이다. 그래서 여러모로 비슷한데, 뒤에 나온 만큼 그래픽, 남코 건콘의 블로우백을 이용한 타격감은 하오데 2보다 낫지만, 하오데 시리즈의 미친듯한 연출과 템포, 신나는 사운드와 중독적인 게임성에는 미치지 못한다. 솔직히 남코가 너무 대놓고 베껴서 그냥 보면 세가의 게임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남코 특유의 절제된 완성도가 그들의 색을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닌자 어썰트와 뱀파이어 나이트는 세가와 남코의 리스펙트가 만든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돌이켜 보니 이 시기에 남코가 드림캐스트로 이식한 소울 칼리버는 패미통 만점을 젤다의 전설-시간의 오카리나에 이어 역사상 두 번째로 받는다. 아케이드 게임의 콘솔 이식 역사에 두 번 다시 없을 초월 이식이었다. 아마 이 이식을 하며 세가의 도움을 받아 나오미를 분석하고 닌자 어썰트의 퀄리티를 세가 본사 수준으로 올렸을 것이다.)

자주 가는 카페에 닌자 어썰트 기판부터 건콘, 건 io보드까지 구동에 필요한 완셋이 올라온 것을 보고 최근에 구매했다. 상태가 썩 좋지는 않지만, 구동에는 아무 문제없다. 좀비 리벤지를 구매해 몇 년 만에 나오미 기판을 구동하면서 자연스럽게 또 다른 나오미 기판을 만났다. 오로지 오락실 꼬마로 살아오면서 콘솔은 플레이스테이션 1 후반기부터 시작했었다. 그것도 오락실 게임의 이식작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나온 세가의 최신 아케이드 기판인 나오미를 거의 완벽이식했던 드림캐스트는 그래서 이름처럼 꿈같은 게임기였다.

아직까지, 아니 죽을 때까지 내게 최고의 콘솔은 드림캐스트일 것이다. 그런 호환성을 가진 나오미에서 발매한 아케이드 게임이면서 드림캐스트가 아니라 ps2로 이식해서 아쉬움을 준 게임이 닌자 어썰트였다. 물론 ps2로의 이식작도 나쁘진 않지만, 세가 나오미 기판 특유의 화사한 색감과 vga출력을 이용한 높은 해상도와 부드러움을 잃었다. 그것은 나오미가 표현하는 가장 강력한 특징을 버린 것이기에 용서할 수 없다.

말했듯 게임은 하오데 2의 테크놀로지에 남코의 테이스트를 담았다. 그래서 재미있냐면? 하오데와는 좀 다른 맛이지만 나는 엄청 재미있었다. 세가는 세가고 남코는 남코이기 때문이다.

닌자 어썰트는 일본 아케이드의 두 거목이 콜라보한 특별한 작품으로 콘솔 이식작은 아케이드와 조금 다르고, 장르는 이미 죽어가고 있기 때문에, 오리지널은 오로지 아케이드 기판으로만 만날 수 있다. 그 조차도 구성의 어려움 때문에 점점 멸종하고 있다. 남코가 남코반다이가 아니고 세가가 세가사미가 아닌 시절 순수하게 서로의 유전자를 섞은 희귀한 유물인 것이다.

20년 넘게 버틴 낡은 남코 건콘을 손에 쥐니 여기저기 파이고 까진 곳이 보인다. 나사는 녹이 슬었고 색은 바랬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다. 문득 언제부턴가 오래 걸으면 고장 나는 내 무릎처럼 세월은 피할 수 없다는 생각에 속이 쓰리다. 그래도 총구를 당기면 “덜컥”하며 힘찬 소리를 내는 게 아직까지는 쓸만할까.

보물섬의 해적 실버와 앵무새 플린트처럼 죽을 때까지 전력으로 날고 싶지만, 지쳤지.

그럼에도... 오래전에 사라진 친구 같은 물건을 만나면, 그 시절 동경하던 황홀한 마음이 떠오르며 어디에 가든, 무엇을 하든 다 해낼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도무지 이 낡은 총을 마음에서 놓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