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남, 구호본격성인만화, 오리온

2025. 6. 21. 17:38책들

Pax는 2권 완결, 풍운아는 오다 노부나가 이야기로 당시에도 휴재중이었다. 대남은 10권 완결.
어떤 서점에 들렀는데 대남 전권이 있어 구매했다. 당연히 좋은 상태였는데, 세월이 흐르면 사람이 늙는 것처럼 책 상태도 많이 안좋아졌다.
너무 충격적인 작화와 내용이었다.
리오바라기
당시 한국 만화계에 커다란 충격을 준 료이치 이케가미의 필력, 엄청난 표절과 아류를 양산한다. 심지어 이현세의 아마게돈도 료이치 이케가미 작품 중 마이의 영향을 받았다.
멋있었던 악역.

평생 마음에 담아둘 엔딩과 대사.

늘 가던 만화방에 새로운 만화들이 들어와 있었다. 원래 그 자리는 다이나믹 콩콩코믹스 자리였는데, 특이한 판형의 책이 몇 권 있었다. 그러면 안됐지만, 단골이었고 이미 매니아였기에 영세한 만화방 주인은 내게 성인만화를 허락했다.

그래서 처음 본 대남은 와! 내 인생의 모든 가치관을 다 바꿔버렸다. 사랑과 섹스, 투쟁과 폭력, 삶과 죽음 그리고 수많은 사랑스러운 궤변들… 권법소년이나 보던 어린애가 어른의 세계를 알아 버린 것이다.

이후로 정말 많은 일본의 청년 만화들이 성인만화로 번역되어 들어왔다. 사실 지금 보면 검열과 모자이크로 원본을 너무 해쳐서 성인만화라고 부르기도 민망하지만, 그래도 작품이 담고 있는 철학은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당시 내가 좋아했던 만화들의 공통점에는 그림보다는 스토리를 썼던 코이케 카즈오라는 작가가 있었다.

굉장히 남성중심적이고 마초성향의 이야기로 사극부터 현대물, SF 별의별소재를 다 다루는데, 이야기의 흡입력이 정말 놀라웠다. 나는 코이케 카즈오가 중국의 무협작가 김용보다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재미와 자극의 천재라는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천재 스토리 작가랄까. 아이를 동반한 늑대, 듀엣, 매드불34, 수라설희, 크라잉 프리맨, 실험인형 오스카…다 적을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수의 극화를 쓰고 히트시켰다. 당연히 당대 최고의 작화가들과 작업했고, 그들의 성공에 큰 역할을 한 일본 대중문화계의 대부다.

이런 세계를 열고, 그전에 읽었던 소년 코믹스에 대한 감흥이 작아졌던 시절이 길었다. 그러나 그런 순위도 세월이 흐르면서 차곡차곡 마음속에서 정리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위대한 장르보다는 위대한 작가가 있고 위대한 성취가 있을 뿐이라는 어찌 보면 당연한 평가를 하게 됐다.

그 시절부터 보물처럼 모았던 몇 백 권의 책을 버릴 수 밖에 없는 시간이 왔을 때 정말 마음이 아팠다. 편집증에 걸린 사람처럼 모으고 보관했던 것들이었다. 그러나 살아남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는법. 어떤 날은 거대한 급류에 휩쓸려가는 무력한 기분을 느낀 적도 있었다. 하루하루 살면서 과연 내가 어디로 가고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시간들이었다.

그런 내 삶이 리오바라기에 비견할 활극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더 가볍거나 한가한 것은 아니었다. 길고 지리했던 고통의 시간들...그 무게에 짓눌리는 중에도 내 마음 가장 깊숙한 곳에 가라앉아있던 책들은 지켰다. 뭐 그딴 게 대단하냐고 물을 수 있다. 꼭 거창한 것을 지키는 것만 대단한 신념이고 성취일까. 길가의 작은 돌, 연약한 풀, 흔한 꽃…그런 것 하나를 지키는 것도 용기와 의지가 있어야 가능하다. 그런 곳까지 닿은 시선이 더 다정하다.

난 다정함, 친절함, 착한 게 쿨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게 진짜 강하고 멋있다. 사실 내 청춘은 다른 또래의 바보들처럼 그런 것을 놓쳤고, 가치를 잘 몰랐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오래 살아 남으며 비로소 찾은 확신이다. 어떻게 대남같이 야하고 잔인한 만화 썰을 풀면서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다만…그런 만화를 찐으로 좋아해야 이렇게 유치한 말도 눈하나 깜박 안 하고 할 수 있다.

이 만화를 한참 좋아할 때 친했던 고등학교 친구가 군대에서 갑자기 내게 편지를 한 통 보냈다. 그 내용이 다 기억나지 않지만, 잊을 수 없는 한 구절이 있었다.

“내가 있는 곳에서는 오리온자리가 잘 보인다. 친구야. 가끔 내 생각이 나면 너도 오리온을 봐.”

정말 비범한 표현이었다. 세월이 검은 묵처럼 흐르며 어느 순간 연락이 끊기고, 이젠 그 친구가 어디서 뭐 하는지도 모르지만, 여전히 그 친구의 부드럽고 깊었던 인품을 기억한다.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도 아닌 시절을 지나면서 가끔 그 날들을 생각한다. 편지라니 웃음이 난다. 지금 같으면 안부 같은 거 카톡 하나면 될 일인데, 친구끼리 편지라니.

친구덕에 내게도 근사한 에픽이 하나 생겼다. 지금도 가끔 밤하늘을 보면서 생각한다.

친구야 나는 오늘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