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탄, 더 세컨드 바바리안

2023. 10. 23. 10:20오락실 기판

 

롬씰에 글자가 지워졌지만, 모두 오리지널, 상태는 좋음.
이 셀러에게 산 모든 기판이 좋았다.
어쩌다보니 둘 다 타이토 1987.
아놀드를 연상시키는 컷신.
의외로 충실한 알피지 요소.
지금도 시원시원한 게임성.

어릴 적에 좋아했지만, 전혀 기억하지 못하다가 우연히 아카트로닉스라는 오락실에서 발견하고 엄청 기뻤던 게임이다. 인기 게임이 아니라서 오락실에서는 나만 했던 게임이었다. 큰 캐릭터에 다소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칼을 휘두르는 미국식 애니메이션이 당시에도 그렇게 멋지다는 인상은 아니었지만, 성인 취향 디자인에 알록달록하면서도 일관성 있는 다크한 세계관은 오히려 지금 더 와닿는 느낌이다. 
 
특히 BGM이 너무 너무 멋있는데, 제목이고 뭐고 다른 건 다 잊었지만, 이 음악만큼은 수년이 흘러도 내 뇌리, 몸속에 박혀있어서 아카트로닉스에서 게임을 구동할 때 약간의 전율을 느낄 정도였다. 
 
라스탄의 메인 테마는 이 게임을 잊고 있을 때도 내 기억에 잔존해서, 다른 어떤 콘솔 게임을 하면서 아 이 테마 어디선가 들었는데 라며 기억이 나지 않아 괴로운 적이 있었다. 그 게임은 이타가키 토모노부의 엑스박스 게임인 걸작 "닌자 가이덴"이었다. 
 
당시 너무 신기해서 두 사운드 트랙의 관계를 찾았지만, 아무런 연관은 없던 기억이 있다. 사실 두 개의 음악을 나란히 들어보니 닮은 구석이 별로 없는데, 왜 그렇게 느꼈을까. 그냥 개인적으로 재밌는 해프닝이어서(나만의 망상정도로) 이렇게 기록한다. 
 
그다지 잘했던 게임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어려운 게임도 아니어서 조금씩 진전이 있던 와중에 사라졌던 게임이었다. 몇 년 전에 한창 기판을 사 모을 때 여러 좋은 기판을 팔던 셀러에게 경매가 끝나는 날까지 아무도 입찰하지 않기에 시가보다 조금 더 싸게 오퍼를 넣어 구매했다. 게임은 언테스티드였지만, 다행히 별문제 없이 구동했다.
 
기판은 북미판과 일본판에 약간의, 어쩌면 큰 차이가 있는데, 북미판에서는 왜인지 스테이지를 클리어 할 때 나오는 컷신이 고정되어 계속 같은 화면만 보여주지만, 일본판에서는 매 스테이지 끝에 컷신이 바뀌며 스토리의 진행에 맞는 연출을 더 해, 훨씬 풍부한 스토리 텔링을 갖고 있다. 
 
어쨌든 게임은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출연해서 유명해진 "코난 더 바바리안"에서 많은 영감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재밌는 점은  내가 가장 재밌게 봤던 홍콩 영화, 지금도 무척 좋아하는, "천녀유혼"이 1987년 같은 해에 개봉했는데, 이 영화 역시 코난 더 바바리안에서 베껴온 장면이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같은 장르는 물론 다른 장르까지 문화의 흐름은 이어진다. 마치 진화처럼 동시 다발적으로 이뤄지는 이런 움직임의 결과를 지켜보는 것은 즐겁다. 그리고 지나간 문화 속 이벤트를 회상하며 나란 인간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알고, 그로인해 어디로 갈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사유하는 것 역시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