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브다, the future is now






제비우스로 유명한 엔도 마사노부의 초기 삼부작 중 하나다. 제비우스, 드루아가의 탑, 그로브다를 나는 그렇게 부른다.
제비우스를 제외하면 본격적으로 만들었다는 느낌이 없는 게임들이다. 드루아가의 탑은 마피의 성공으로 찍어놓았던 기판의 재고를 처리하기 위해 급하게 만든 게임이고(그래서 초기 드루아가의 탑은 모두 마피의 팩토리 컨버전이었다), 그로브다는 쉬는 텀을 이용 겨우 3개월 만에 만들었다고 한다.
그로브다는 제비우스에 나오는 아무런 공격도 하지 않는 캐터필러로 이동하는 수송기인데, 이 기체를 구동해 싸우는 가상의 미래 스포츠가 게임 "그로브다"이다.
면 클리어 방식으로 레이저를 쏘고 방어막을 펼치는 그로브다를 이용해 한 스테이지의 적을 모두 제거하면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간다. 스테이지는 모두 99개, 게임이 1985년 경에 발매했는데, 노멀 난이도에 현대적인 구성 1 코인 3기, 1만 보너스 1대로 최초 클리어 하는 사람이 나온 것은 무려 2015년쯤이었다고 한다. 거의 30년이 걸린셈이다.
그로브다의 디폴트 노멀 세팅은 원코인 3 크레디트인데, 로케 테스트 당시 1코인 10기였던 것을 손 본 것이다. 일본 아케이드에서 애초에 원코인 클리어는 이지 세팅이 목표였다. 이지 난이도 최초 달성자는 1988년에 나왔다고 한다. 이후 수많은 게이머가 노멀 난이도에 도전 한 것이다.
어찌 보면 별 것 아닌 99개의 스테이지다. 놀랍게도 스테이지 셀렉트가 되기 때문에 연습 역시 가능했다. 그럼에도 원코인 클리어가 이렇게 힘들었다니.
나는 이 게임을 기판 구매하면서 알게 됐고, 제비우스를 따라가다 만나게 된 게임이었다. 드루아가의 탑은 물론 그로브다도 한눈에 반해서 기판을 찾았다.
그나마 드루아가의 탑이 국내 매장 아카트로닉스에 있고, 속편에 2차 창작으로 명성이 많이 노출된 반면, 그로브다는 거의 국내에는 알려지지 않은 게임이었다.
그러나 황금기 남코에 대한 동경, 천재 엔도 마사노부를 향한 강력한 호기심과 믿음으로 몇 년에 걸쳐 기판을 찾다가 드디어 작년에 구매했다. 물론 가격이 아주 훌륭했다. 그럼에도 오리지널 롬씰(오염이 있지만) 역시 모두 있다.
게임은 아주 현대적이다. 그로브다의 세련된 움직임에 묵직한 가속이 가능하다. 그로 인해 저속시에 8방향도 아닌 무려 16방향으로 레이저를 제어하며 쏠 수 있다. 적들의 공격 역시 현대 슈팅 게임의 고속탄이 아쉽지 않을 만큼 빠르고 다양하다. 그로인해 장애물과 실드의 사용에 긴장감이 넘친다. 작은 캔버스에 무한한 전략성과 예측 불가의 순발력을 욱여넣었다.
나는 이 블로그의 첫 번째 게임으로 제비우스를 이야기했다. 앞으로도 몇 개의 기판과 게임이야기를 더 하겠지만, 작년 마지막으로 구매한 그로브다를 끝으로 더 이상의 기판 구매를, 적어도 올해에는 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러니까 올해의 목표는 단 하나의 기판도 구매하지 않는 것이다. 어쩌면 그로브다는 내가 구매하는 마지막 기판이 될 수도 있다.
대학생 시절에 단 돈 만원이 생기면 영화를 볼지, 책을 살지, 음반을 구매할지 늘 고민했다. 그 고민으로 습득한 영감과 교양은, 이후 세상에 넘치는 문화들을 내 멋대로 즐길 수 있는 자양분이 됐다.
이젠 내 남은 인생과 열정을 어떻게 분배할지 고민할 타이밍이다. 더이상 행복한 마약 중독자처럼 기판에만 빠져 살지 않겠다. 이미 기판과는 작년에 많이 멀어졌지만, 끝자락에서 시의적절하게 그로브다를 구했다.
자 내일, 또 무엇이 나를 기다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