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인왕, 장인이 꾸는 꿈




토아플랜 게임을 그닥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그만큼 덜 즐겼고, 잘 몰랐다. 그러나 오락실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토아플랜의 업적은 쉽게 넘어갈 수 없기에 교양의 차원에서라도 경험하고 싶었다. 다행히 최근 M2가 토아플랜 라이센스를 구매해서 훌륭하게 이식해주기 때문에 기다리면 해결될 일이었지만, 역시 호기심이란 무서운 것이다.
절대 싸지 않은 가격에 달인왕을 구매했다. 해외의 가격과 국내 판매가를 모두 고려했고, 비싼 만큼 까다롭게 고를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발품을 팔고, 머리를 굴리고, 네고를 하는 시간에 차라리 조금이라도 더 즐기는 게 낫다는 게 최근의 소신이다.
달인왕이 마음에 남았던 것은 가정에서 기판을 구동하는 한 일본 유저의 동영상을 보고 나서였다. 그전까지는 한 번도 끌린 적이 없었는데, 그 플레이어의 게임에 임하는 태도나 환경, 기통에서 구동되는 강렬한 달인왕 타이틀 화면의 아우라에 이끌렸던 것 같다.
그리고 받은 기판, 달인왕은 엄청났다. 시대와 유저의 취향을 넘어서는 걸작으로 슈팅 역사의 한 시대를 마무리하는 장인의 광기 어린 절규였다.
게임은 제목만큼이나 고난이도의 테크닉과 이해를 요구한다. 모든 적들은 정해진 위치에서 약간의 빈틈도 놓치지 않고 플레이어를 공격한다. 대다수의 슈팅 게임이 그렇지만 달인왕은 더 집요하게 완벽에 가까워야 한다고 말한다. 이 부분이 게임에 대한 이해와 공부보다는 순발력으로 즐기는 유저들에게 비판받는 지점이다. 너무 어렵다는 말은 반대로 너무 공부할 게 많다는 말이다. 중요한 것은 어렵기만 한 게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을 때 쾌감의 디자인이 절묘해서 감탄이 나온다.
난해한 퍼즐을 풀었을 때의 쾌감처럼 겉으로 보는 게임과 뛰어들어서 헤쳐나갈 때 전혀 다른 인상을 준다. 이를테면 어떤 적들은 마주했을 때 좌우로 움직이는 것보다는 위아래로, 심지어는 가만히 있는 게 유리할 때가 있다. 꼼수가 아니라 적의 움직임과 체력에 맞춰 내 기체를 정확하게 운영해야한다. 제대로했을 때 적 기체의 폭발에 맞춰 효과음처럼 둥둥 울리는 베이스 BGM이 그 디자인의 증거다.
그래픽은 토아플랜 게임 중 가장 좋다. 세계관은 설득력이 있고, 도트는 치밀하다. 이 게임의 도트를 작업한 사람이 나중에 스퀘어로 가서 파이널판타지 5 나 6의 작업을 했다고 들었다. 일본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 더 놀라운 것은 이 그래픽 스타일이 그대로 한참 뒤 케이브로 이어져서 돈파치와 도돈파치로 연결된다. 내가 보기에는 달인왕이 최고다.
달인, 달인왕이 돈파치, 도돈파치로 이어지는 케이브 진화의 핵심 키워드를 제공했다. 케이브가 돈파치 하이스코어 이니셜에 토아플랜 포에버라고 쓴 것은 바로 이 달인왕이 이뤄냈던 성취와 자부심에서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언제나 최고였던 BGM은 그 일부가 도돈파치에서 약간의 변주로 다시 쓰였다는 말로 갈음한다. 그야말로 게임사에 남을 최고의 사운드트랙이다.
내 올해 목표는 달인왕을 원코인 클리어하는 것이다. 너무 어려워서 첫판을 제대로 클리어하는데도 무려 일주일이 걸린 게임이다. 그럼에도 끝없이 예측할 수 없는 사고가 속출해서 도무지 이 게임을 언제 정복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다. 몇 십 년 전, 장인이 꾸었던 꿈 속에 늦게라도 내가 합류했다는 것에, 그들이 이뤘던 위대한 유산과 광기를 이제라도 체험할 수 있는 인연에, 심지어 지금 해도 조금도 늦지 않았다는 그들의 깊이에,
경탄하고,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