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촌, 유년기의 끝




건스모크가 아버지와의 추억이라면 마계촌은 어머니와의 추억일까. 이 게임을 처음 본 기억을 거슬러가면 결국 엄마의 손을 잡고 시장에 갔던 기억에 도착한다. 당시 젊은 나이였던 엄마는 활동적이고 모험심이 강한 장난끼 많은 여성이었다. 그래서인지 집에 쳐박혀 있던 나를, 오락실, 만화방에 끌고 다니셨다.
속초에는 곳곳에 오락실이 있었지만, 시장에 있는 오락실은 어린 내게 너무 먼 곳이라 아주 가끔 엄마를 따라가는 일이 아니면 좀처럼 구경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더 호기심을 자극했고 실제로도 시장이라 신기한 게임이 있었다.
마계촌을 처음 본 오락실은 시장 초입, 2층에 있던 오락실이었다. 어두컴컴한 계단을 올라가서 문을 열면 낮은 조명에 다수의 오락기통이 있었는데, 거기 문 왼쪽 좁고 길게 늘어선 오락기통 중에 하나였다. 나는 마계촌을 처음 본 순간부터 좋아했다. 특이한 그래픽, 색감이라고 생각했으며, 동전을 넣고, 스타트를 누르자 울려 퍼지는 사운드에 완전히 매료됐다.
이후 사는 동네에 이 게임이 들어오고서는 동네 아이들과 꽤 오랫동안 엔딩을 보기 위해 도전했었다. 많은 소문이 돌았다. 엔딩이 없다. 방패를 가지고 가야 한다. 방패가 아니라, 십자가다. 두 번 깨야한다. 이 게임에서 가장 좋은 무기가 칼이라는 것은 이제 모두 아는 사실이지만, 당시에는 칼을 들고도 절대 쉬운 게임은 아니었다.
일요일 오전 10시 정도에는 동네 아이들이 마계촌의 기통 앞에 모여 동전을 넣고 이어 엔딩에 도전했었다. 어느 날에는 내가 마치 신들린 사람처럼 용의 총알을 피하며 뛰어다녔던 기억이 있다. 게임을 하다 보면 그야말로 혼연일체가 되는 순간이 있다. 그러나 그때에도 나는 엔딩을 본 적이 없었다. 오로지 칼로 사탄을 죽이고 한 번 돌았던 게 다였다. 사실 그렇게 몇 번 도는 시스템을 그때부터 별로 안 좋아했다.
그래서 스스로 이 정도면 엔딩을 본 거나 다름없다고 마음대로 결론지었고, 나중에 마계촌을 만나도 딱 그 정도만 했다.
그리고 기판 구매를 시작하면서 평생 도전했던, 건스모크를 기판으로 원코인 클리어하고 자연스럽게 마계촌을 떠올렸다. 십수 년간 병투병하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건스모크를 했지만, 이미 엉망이 된 어머니와의 관계는 사실 그다지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오래전 추억을 뒤지다 나온 젊은 시절 엄마의 활짝 웃는 얼굴이 나를 흔든 걸까.
마계촌은 정말 잘 만든 게임이다. 시대를 타지 않는 그래픽 센스, 바로 반응하는 조작성, 단순하지만 치밀하게 설계된 적들의 인공지능, 그리고 한 번 들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최고의 사운드트랙.
아주 오래전에 이 게임의 작곡가를 찾은 적이 있었다. 놀랍게도 여성이었고, 그녀의 이름은 아야코 모리다. 그녀가 바로 초기 캡콤 사운드팀의 디렉터로 1942부터 시작된 거대 비행선의 이름 아야코는 그녀에 대한 오카모토, 게임 제작자들의 헌사였다. 당시 아케이드 게임의 제작자들은 회사의 오너에 의해 그들의 이름을 넣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아마도 이후에 생길 저작권 문제를 미리 대비했던 것 같다.
그녀가 만든 놀라운 사운드로는 손손, 마계촌, 건스모크, 사이드암스, 트로이얀… 얼핏 봐도 내 어린 시절을 사로잡았던 엄청난 작품들이다.
나는 건스모크에 했던 것처럼 매일 한 판씩 마계촌에 도전했다. 금방 익숙해졌지만 후반부, 엔딩을 위한 십자가 플레이에는 진전이 더뎠다. 하지만 다 사람이 하라고 만든 게임. 결국 어느 날 십자가를 들고 대마왕을 두 번 무찔러 대망의 원코인 엔딩에 성공했다.
그 순간의 환희와 두근거림이 절대 건스모크와 다르지 않았다. 다른 점이라면 건스모크는 끝없이 도전해도 건널 수 없던 벽을 넘은 기분이라면, 마계촌은 정면으로 바라보기 싫어서 외면하던 것을 용기 내 이긴 기분이랄까.
그런다고 인생이 크게 달라질 건 없다. 고작 게임에 불과한 것, 돌아가신 아버지나 소원해진 어머니에게 닿을 리 없는 내 마음을… 그냥 위로할 뿐이다.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에게, 어린시절의 나에게, 이젠 다 이겨냈으니 괜찮다고 변명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