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실 기판

세가 닌자(닌자 프린세스), 모에 남바완!

매드 포엣 2023. 7. 5. 13:04

 

보기 힘든 완전 오리지널 기판, 롬씰 상태가 별로긴 하지만 구성은 완벽하다.
기판 상태는 아주 좋다.
세가 시스템 1 기판의 롬씰에는 늘 도트로 글자가 적혀있다.
상쾌하고 파란 세가!
머리가 엄청 커서 귀욤.
뭐야 흙놀이 중인가.
머리가 크고, 몸이 작은 여자아이를 다소 과장되게 표현한 귀여운 도트.

1979년 리들리 스콧 감독 작품 에일리언은 인류사에 남을 뛰어난 비주얼과 강인한 여성 주인공을 내세워 비평과 흥행 모두에서 크게 성공한다. 이 영화의 속편인 에일리언즈는 흥행감독 제임스 카메론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역시 성공했다. 
 
영화 주인공 리플리역을 맡았던 시고니 워버는 키가 180센티의 여성으로 어지간한 남성들에게도 밀리지 않는 피지컬과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었다. 당시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가 없던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대놓고 남성성과 겨루고 이겨 지배하는 블럭버스터는 처음이라고 생각한다. 
 
에일리언의 성공으로 서브 컬쳐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중에서도 게임에 끼친 영향을 생각하자면 대놓고 이미지를 따라한 그러나 아주 창의적인 닌텐도의 메트로이드가 있다. 미야모토 시게루 진영이 아니라 요코이 군페이 진영의 메트로이드는 1986년에 만들어졌으며 군페이가 죽은 후 한동안 버려져있다가 미야모토에 의해 1인칭으로 부활한 후 다수의 명작을 만들었다. 
 
그러나 세계 최강 닌텐도의 메트로이드가 오로지 에일리언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면 석연찮은 구석이 있는데 바로 남코의 1985년작 바라듀크(영어명 에일리언 섹터)가 그것이다. 역시 슈트를 입은 주인공이 정체불명의 외계 생명체와 싸우는데 나중에 가서야 슈트 속의 주인공이 여성인 것이 밝혀진다. 이건 나만의 오해일 수도 있지만 전혀 달라 보이는 두 개의 게임은 의외로 연속적으로 즐길 때 묘한 공통점이 느껴진다.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새우는 것은 스토리, 미학적인 부분에서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다는 장점 외에도 소외되어 있던 여성 소비자들을 끌어 모을 수 있다는 상업적 이점을 취할 수도 있다. 
 
당시 최고 황금기를 구가하던 남코의 창의력은 닌텐도도 질투할 정도였지만, 어쩌면 최초로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새운 게임은 에일리언의 영향을 받은 이 둘이 아니라 독고다이 9단 세가의 닌자 프린세스(세가닌자)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닌자 프린세스 아케이드 출시는 1985년 3월로 이후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새운 바라듀크(동년 5월),온나산시로(10월)보다 빨랐다. 바라듀크가 성인층을 겨냥한 쿨한 게임이라면 온나산시로는 소녀 유도 선수 캐릭터에 성적인 조미료가 더해진, 약간은 야한 게임이다.
 
그러나 닌자 프린세스는 제목처럼 다소 귀엽고 얼빵한 여자 공주를 닌자화 시킨 슈팅 게임으로 게임 시작 시의 오프닝도 그렇지만 그래픽에서도 의도된, 어설픈 귀여움을 포인트로 만들었다는 것은 다른 게임들과는 차별점이 있다. 
 
이것이 어쩌면 당시 세가라는 회사의 화풍과도 맞닿은 면이 있는데, 시스템 1으로 만들어진 게임들이 전반적으로 귀엽긴 했다. 
 
여하튼 세가 역시 오락실에 최초로 여성 화장실을 만들어 여성 유저들을 끌어들이려고했다는 사실은 잘알려졌지만, 그런 전략과는 전혀 상관없이 닌자프린세스는 단순히 모에의 본질에 다가간 게임이었다. 모에가 뭐 별건 아니지만, 이게 꽤 귀엽단 말이다! 닌자 프린세스는 게임 구성도 당시 게임으론 알차고 깊이가 있지만, 그래픽, 모션에서 뭔가 아장거리는 귀여움이 있어서 계속 보고 싶다.

그러니까 여성 캐릭터가 주인공인 정도에 그치는 게 아니라 일본 서브 컬쳐 산업 중 가장 주요한 코드인 모에를 표현한, 최초의 오락실 게임 캐릭터라는 놀라운 업적이 더해지는 것이다.
 
이런 전략을 구사하는데는 아무래도 그래픽 디자이너의 역량이 컸을 것인데, 찾아보니 게임의 그래픽 디자이너는 리에코 코다마라는 얼마 전에 돌아가신 여성이었다. 그녀는 이후에도 세가에서 꽤나 오랫동안 게임을 제작하며 요직에 있었다. 그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것은 역시 그래픽 디자인을 맡았던 쿼텟으로, 세가를 관통하는 일관적인 상쾌함이 느껴진다. 8, 90년대 세가의 색을 표현하고 만들어낸 주요 인물 중 하나가 아닐까.
 
닌텐도나 초기 남코가 월드와이드한 면모를 가졌다면, 세가는 참으로 80년대의 버블 재팬을 떠올린다. 나쁜 쪽 말고 좋은 쪽으로 말이다. 크리스찬 아니라도 크리스마스라는 말을 들으면 가슴 뛰는 것처럼, 시티팝을 들을 때의 그 느낌처럼, 세가에게는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오후의 쓸쓸한 설렘이 있다. 
 
1. 이렇게 모에한 게임을 만들고선 콘솔 이식작 중의 하나는 아예 주인공 쿠루미를 남자주인공으로 바꿔 게임을 개작했던 것은 역시 병맛 세가답다. 
 
2. 몇 년 전에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든 레디 플레이어 원의 속편 레디 플레이어 투가 소설로는 이미 발간되었다. 그 속편의 주요 플롯 안에는 이 게임 닌자 프린세스가  들어가 있어서 해외에서는 화제인 것 같다. 왜냐하면 너무 오래된 게임이라 지금 그 소설을 읽는 젊은 독자층들은 이 게임을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튜브 세가닌자 동영상에 가 보면 레디 플레이어 투를 읽고 왔다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