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실 기판

원더보이와 댄스 댄스 댄스!

매드 포엣 2023. 7. 15. 19:29

벼르던 원더보이 기판을 꺼내 손을 봤다. 몇 년 전에 미국에서 산 기판이었다. 낫워킹이었던 놈을 그때 대림 상가에서 고쳤다. 그러나 늘 그렇듯 성에 차지 않았다. 화면이 들어오고 캐릭터가 움직일 뿐, 화면에 수많은 오류들은 나를 화나게 했다.

정말 이게 최선이란 말인가. 아예 움직이지 않던 낡은 물건에 생명을 준 것은 고맙지만, 조금만 더 신경 써 주면 안 될까. 기판과 사랑에 빠지는 일은 힘들다. 30년 전, 40년 전 나온 물건들에게 다시 그 시절처럼 쌩쌩하게 돌아가기를 바란다는 게, 마치 20살 때의 나로 다시 돌아가길 바라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일까.

며칠 전 밤은 정말 더웠다. 나는 속옷이 젖을 정도로 운동을 하다가 불현듯 방에 들어가 원더보이 기판을 여기 저기 뒤져 꺼낸 후, 기판의 롬들을 하나씩 뽑아 테스트했다. 몸에서 나는 열과 기판에서 나는 열은 더운  밤을 더 달궜다. 이젠 망가진 내 장기를 더듬듯이 기판 구석구석을 살피며 롬들을 읽어 수정했다.

롬의 이름과 기판의 버전을 하나씩 살피며 내가 가진 원더보이의 정체를 조금씩 알아갔다. 원더보이 기판이라는 큰 카테고리에서 아주 작은 나만의 원더보이로 좁혀질수록 애정이 깊어진다. 오락실에서 수많은 아이들에게 기쁨을 주었던 이 녀석의 화려한 과거가 그려지고, 마지막 화면을 뿌리며 장렬히 꺼지던 순간을 상상한다.

내 등의 밤을 타고 긴 땀이 흘러내릴 때 즈음, 원더보이는 다시 온전히 일어섰다.

여기에 있다 원더보이.


몇 번을 봐도 기분 좋아지는 원더보이 타이틀 화면,

이봐 친구! 너와 함께라면 해낼 수 있다구! 다시 한번 신나게 춤을 춰 보자!

다시 잘 출 수 있을까?

하하 잘 추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해.
춤을 출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