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내 마음의 고향, 오락실

매드 포엣 2023. 12. 30. 17:59


나는 정말 오락실을 사랑했다. 처음 어머니의 손을 잡고 오락실에 발을 들인 이후에, 줄곧 어느 도시를 가든 오락실을 찾아다녔다. 그곳은 엘도라도였다. 성인이 되고 낯선 도시의 밤을 맞을 때도 홀린 듯이 오락실에 갔다. 낡은 조명과 고요 속에서 울리는 단순한 사운드가 좋았다. 외로움을 느낄 때면 더 오락실을 찾았다.

왜였을까? 
 
전통적인 오락실이 모두 사라진 지금, 즐겨 가는 카페의 회원들이 일본의 오락실, 성지라고 불리는 클래식한 유명 오락실 탐방기를 올렸다. 나 역시 호기심이 없던 것은 아니었기에, 그 글들을, 사진을 몇 번 곱씹었다.  많은, 다양한 기판과 기통들이 있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가고 싶은지 물었지만, 답은 아니었다.
 
왜였을까.
 
내게도 기판은 이제 충분히 있다. 기판이 없다면 콘솔 이식작을 찾으면 되고, 그조차 없다면 에뮬을 찾아도 된다. 만약 그게 부끄럽다면 그냥 그리워하면 된다.
 
게임 환경에 대한 아쉬움도 없다. 기통과 컨박을 오가며 브라운관으로 플레이하는데 딱히 어떤 기통, 특별한 조건으로 즐겨야 한다는 강박도 없다. 오히려 최근에는 좋은 스케일러가 많이 나와서 hdmi로 게임을 즐길까도 생각 중이다.
 
그런 내가 떠나지 못하고 꿈꾸는 오락실은 어떤 오락실일까 고민해 본다. 그러다 도달한 결론은 내게 오락실은 사람들이 있는 오락실이었다. 매일 같은 추억을 공유하며 함께 자라던 친구가 있고, 나를 돌 보던, 건강하고 따듯한 부모님이 있고, 무엇보다 꿈이 있던 아이, 때 묻지 않았던 아이가 오락실에 있었다. 그러니 내게 오락실은 단순히 신기한 기판이 많고 훌륭한 오락기통이 있는 곳은 아닌 것이다.
 
여기에 도달하고 나니 이 세상에 내가 찾는 오락실이 과연 있을까 회의가 든다.

집안에 연이어 안 좋은 일이 생기던 대학시절, 여물지 않은 사람이었던 내게 춘천의 길은 낯설었다. 몸과 마음을 다듬기 위해 도장에서 저녁 운동을 마치고 하숙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은 쓸쓸했다. 그러면 술 냄새나는 공중전화 부스를 바라보다가 근처의 아직 불이 꺼지지 않은 오락실의 문을 열었다. 그 문을 열면 마치 어릴 적 그 밍키 오락실로 들어갈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곳에는 세상에 서먹해진 설익은 아이만 홀로 서있을 뿐이었다. 그때부터 너무 멀어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세상의 끝, 미지의 영역으로부터 나의 세상은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그렇게 어른이 되면서 나는 밍키 오락실로 가는 길을 영영 잃어버린 것이다.

그러니 내게 더 이상 가고 싶은 오락실 같은 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