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실 기판

파이로스, 와드너의 숲은 설렁설렁킹

매드 포엣 2024. 1. 10. 16:55



토아플랜에서 만든 액션 게임이다. 음악 및 게임 디자인에서 간판인 유게 마사히로나, 우에무라 타츠야가 제작한 작품이 아니라서 그들의 슈팅 게임들과는 색채가 사뭇 다르다.

어릴 적에는 당연히 제작사 같은 건 몰랐고, 그래도 나름 재미있고 쉬워서 원코인 하며 즐겼던 게임이다. 그 시절, 조그만 동네 오락실에서 막혔던 기믹을(물론 지금 보면 너무 시시한 트랩이지만 ㅋㅋ) 혼자 해결해서 꽤 기뻐했었다.

당시에는 찐빵 같은 놈이 설렁설렁 걸어 다니는 게임이라 그래픽이 딱히 인상적이진 않았는데, 지금 와서 브라운관을 통해서 꼼꼼히 보니 굉장히 공을 들인 아트웍과 애니메이션이 매력 넘친다. 토아플랜 게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음악 역시, 이전의 슈팅 게임과는 다른 나른하고 몽환적인 사운드가 일품이다.

조작감은 우수하고, 게임 안에 숨겨진 것들이 많아서 찾는 재미가 있다. 그러나 어느 정도 하면 손에 쉽게 익어서 어릴 적에 그랬던 것처럼 계속할 것 같지는 않다.

기판은 이전에 고장 난 것을 구매해서 가지고 있다가 최근 고쳤다. 이렇게 예전에 사 둔 고장 난 호러 스토리 기판이 두 장 더 있다. 신기하게도 어릴 적 보다 지금 더 좋아진 게임들이다. 토아플랜의 슈팅 게임들이 최전선에서 치열하게 최고의 자리를 두고 다퉜다면, 액션 게임들은 최고 따위 알 게 뭐야 식의 나사가 풀린듯한 느슨함이 멋있다. 그러면서도 완성도가 떨어지냐며 그렇지 않다. 내가 보기엔 오히려 마구 토해냈던 슈팅 게임 보다 나은 면이 많다.

내가 가지고 있는 파이로스는 일본판 "와드너의 숲"의 북미버전이다. 게임성에서의 차이는 거의 없지만, 시작 시 이니셜을 세 개만 적을 수 있고 시간제한이 일판은 기본 3분인 것에 비해 북미 버전은 2분으로 빠듯하다. 그래서 스테이지가 끝나면 나오는 상점에서 시계는 무조건 구매하는 것이 좋다.

나는 어릴 적에 캡콤 게임만 했는데, 가끔 다른 게임을 할 때면 캡콤은 아니지만 할만하네란 기분으로 즐겼던 것 같다. 그래서 이런 게임들이 가장 친했던 친구로 느껴지진 않지만, 어쩌다 나이 먹고 다시 만나면서, 적당히 알던 친구의 몰랐던 멋있는 면모를 발견하고 감탄하는 것처럼, 예전에 그냥저냥 했던 게임의 그때는 알아채지 못했던 훌륭한 코드를 발견하는 게 너무 즐겁다.

역설적으로 그런 것을 발견할 수 있을 만큼 내가 성장했다는 기쁨 역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