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덴 2, 1993의 잊혀진 유산




최근 라이덴 1을 원코인 클리어한 후, 한동안 라이덴 1만을 즐기다 2주 전부터 라이덴 2를 하고 있다. 라이덴 2가 출시됐던 시절을 회상하면 늘 가던 오락실, 라이덴 1이 있던 자리에 갑자기 라이덴 2가 들어왔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 인상은 전작의 업그레이드 정도로 크게 특별한 인상은 없었다.
물론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플라즈마 무기를 잊을 수 없겠지만, 게임의 난이도는 1을 훨씬 상회하는 최고난이도 게임으로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게임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라이덴 2의 국내 인기는 대단했다고 생각한다. 대다수의 게이머들이 라이덴이라면 바로 이 라이덴 2를 라이덴으로 기억하는 부분에서 그렇다.
30년이 흐른 게임을 지금 다시 하나씩 뜯어보는 입장에서, 이 게임은 여러 의미로 미친 게임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적기를 배치하는 악랄한 디자인에서부터, 2d 도트 게임으로 이 게임보다 그래픽으로 빈틈없이 아름다운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슈팅 게임이 있을까? 단순히 한 컷의 이미지 말고, 게임 안에서 움직이는 오브젝트들의 유기적인 애니메이션과 기체들의 구동 메커니즘이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입이 벌어질 정도로 장관이란 것이다. 사운드는 1편의 경파한 느낌에서 애수 넘치는 멜로디로 바뀐 것이 특징인데, 게임의 하드한 분위기와 대조되며 페이소스를 자아낸다.
내적으로 게임 레벨 디자인이 완벽에 가까웠던 1의 것을 그대로 가져오며 에너지를 아끼는 대신에, 외적인 그래픽과 사운드에 중점을 둔 것이 여실히 보인달까. 빼앗은 왕좌의 주인이 자신들임을 다시 한번 과시하며, 다른 경쟁자들에게 꿈도 꾸지 말라고 고함치는 화려한 거인을 보는듯하다.
그러나 국내에서의 인기와는 달리 자국인 일본에서 전작만큼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슈팅게임의 하락기이기도 했지만, 당시 슈팅게임들의 고난이도는 마니아 전용 게임으로 인식이 전환되며 일반 유저들이 즐기기에는 무리가 많았다. (그리하여 좀더 완벽에 가까운 밸런스인 메이저 업데이트, 신겜 라이덴 DX가 이듬해 1년만에 출격하게 된다.)
그 실패 때문인지 일본판과 세계판의 구성이 좀 다른데, 보통은 세계판을 쉬운 버전이라고 부른다. 탄속과 적의 배치가 일본판이 훨씬 빠르고 까다롭다. 그렇다고 세계버전이 무조건 쉽지만은 않은 것이 일본판에 있는 공략법을 살짝 꼬아놓은 부분이 있어서 그렇다.
라이덴, 라이덴 2, 라이덴 DX 중에 1p, 2p 기체의 선택이 게임성에 가장 적은 영향을 주는 시리즈다. 가지고 시작하는 폭탄의 종류가 다를 뿐 기체의 성능이나 게임의 난이도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최근 차이가 하나 더 발견 됐는데, 한 스테이지에서 캐리어가 파워업 없이 폭탄만 연속으로 나오는 기믹이 1p에만 한정한다는 것이다.
수십 년의 게임 인생에서도 비주얼과 사운드로 손에 꼽을 퍼포먼스의 슈팅 게임이다. 문장이 아름다운 소설, 그림이 특별한 만화, 미장센이 남다른 영화처럼 그 자체만으로도 노력과 재능이 완벽하게 결합해야만 나올 수 있는 결과물이다. 단순히 보이는 그래픽이라면 이후 30년 동안 나온 높은 스펙의 게임들이 언뜻 더 대단해 보일 수 있지만, 일일이 안을 들여다보면 라이덴 2 보다 더 높은 수준의 기술과 아트의 결합은 손에 꼽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5스테이지, 블랙버드는 디자인부터 구동 애니메이션이 충격적으로 멋져서 필견으로 꼽는다.)
마치 늘 스쳐 지나던 둔덕이 알고 보니 오래전 왕릉이었던 것을 알게 된 것처럼, 흔해빠진 아케이드의 유물이 실은 잊혀진 보물이었던 것이다. 그걸 지금 오리지널로 즐기는 호사라니...
그리하여 단순히 소장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꾸준히 플레이하며 진솔한 경험과 지식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1993년으로부터 출발해 지금 여기 나에게 도착한 유산에 대한 의무라고 생각한다.
어떤 위대한 책도 오로지 책장에 꽂혀있는 채로 행복할리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