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보이 몬스터 랜드, 나에게 오라 너에게 가마




자주 가는 커뮤니티에 정크 기판 몇 개가 올라왔다. 어지간하면 정크를 사지 않기로 다짐 한 나였지만, 그 리스트는 지나치기 힘들었다. 두 개가 눈길을 끌었는데, 원더보이 몬스터 랜드와 아레스의 날개였다.
원더보이 2는 이미 복사와 정품을 가지고 있지만, 정품의 상태가 좀 아쉬워 하나 정도는 정품으로 더 구하고 싶었다. 아레스의 날개는 니시야마 타카시의 작품이고 어릴적 오락실 여기저기 깔린 작품이라 많은 추억이 있지만, 작품의 완성도가 공포스러울 정도로 허접하고, 가격마저 비싸서 전혀 관심을 안 두던 기판이었는데, 다른 정크들과 꽤나 저렴한 가격에 올라 결국에는 구매했다.
사실 개중에 두 개가 구매 이유라고 해도 9대1 정도로 원더보이 몬스터 랜드가 나의 주된 관심사였다. 그 가격에 원더보이만 구매해도 싼 편이었다. 아레스의 날개는 그저 핑계였달까.
배터리가 죽어서 구동이 안되는 걸로 짐작했고, 그렇다면 그동안 정품을 만지며 쌓은 경험을 실험할 좋은 기회였다. 그리고 배터리 패치하는 롬을 세 개 구워서 예상대로 별문제 없이 구동에 성공했다. 나머지 기판 모두가 구동 안 되는 정크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셈이다.
이전 포스팅에서도 한 번 다뤘지만 원더보이 몬스터 랜드는 진정한 갓겜이다. 40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즐거움은 1도트도 줄지 않았다.
원더보이 2가 처음 발매됐을 때의 당혹감이 지금도 기억난다. 원더보이가 오락실에서 엄청난 히트를 하고 시간이 흘러 그 자리에 원더보이 2를 새로 설치 한 날 아무도 전작의 속편이라고 믿을 수 없었고, 생소한 게임성에 금세 외면 당했다.
당시로서는 기묘한 게임이었다. 느리고 관성이 느껴지는 무거운 조작감에 도무지 알 수 없는 스토리와 진행 방향이었다. 그러나 원더보이 2에 빠져든 아주 소수의 아이들에 의해서 게임은 조금씩 정복당했고, 신비로운 정보와 경험은 순식간에 아이들에게 전파되며 게임의 베일이 서서히 벗겨졌다.
다른 동네에서 놀러온 아이에 의해서 숨겨진 방이 발견되고, 다른 오락실에 원정 갔다가 아이템의 쓰임을 알게 됐다. 마지막 미로를 돌며 드래곤을 해치울 때, 그날 오락실에는 오로지 원더보이 몬스터 랜드만이 구동되고 있었다. 오락실에 모인 모든 아이들이 숨을 죽이고, 마지막 스테이지의 긴박한 BGM을 들으며 한 마음으로 따라갔다.
그 자리에 앉아있던 최초의 꼬마가 분명 나였다고 기억한다. 그러나 40년 정도 흐르니 이젠 잘 모르겠다. 내가 플레이어석에 앉아있었는지 아니면 곁에 앉아서, 서서 홀린 듯이 게임을 관전하며 응원했는지 잘 모르겠다. 그게 뭐가 중요하겠는가.
시간이 흐르며 코인을 먹는 다양한 기술이 나왔다. 그로인해 비싼 아이템 구매가 편해져 게임 플레이가 굉장히 쉬워졌다. 레버를 여러번 흔들어 60이상의 코인을 먹는 방법은 버그였던 것으로 이후에 밝혀졌다. 피라미드 내부에는 점프하는 요령에 의해 60코인을 연속으로 8번 정도 먹을 수 있는 구역이 있다. 이 또한 버그였을 텐데, 공교롭게 그 곳이 피라미드 속이었던 것이 참 절묘하다.
일본 사람들의 추억 또한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어떤 오락실에서는 늘 친구인 듯한 두명의 꼬마가 노트를 가지고 다니며 플레이했다고 한다.
하여튼 이런 과정을 거쳐 원더보이 몬스터 랜드는 모두가 쉽게 원코인 할 수 있고, 모두가 사랑하는 위대한 추억의 게임으로 완성됐다. 오락실에 모였던 모든 꼬마들이 이 게임의 긴 여정에 저마다의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이 게임을 만든 천재 디렉터 니시자와 류이치에 대해 언제 이야기 할 날이 있을지 모르겠다. 원더보이 1을 거의 혼자 만들다시피 했으며 UPL에서도 닌자군을 창조했던 위대한 크리에이터이다. 원더보이 2 하면 잊을 수 없는 불멸의 명곡을 만든 작곡가 사카모토 신이치 역시 그렇다. 유래가 없는 상쾌하고 아름다운 선율은 중독성이 높으면서 언제 들어도 행복하다. 마지막 엔딩 스탭롤이 올라갈 때 나오는 엔딩송은 80년 대를 살았던 사람이 들으면 코가 찡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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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40년은 긴 시간이다. 내가 누구였는지, 무엇을 꿈꿨는지 다 잊을 정도로 길다. 그러나 예술 안에서 그 시간은 찰나와 같다. 추억으로 숙성된 예술은 단숨에 우리를 무장해제 시킨다.
기통에 전원을 넣고 플레이 하면 모든 것이 복리템진을 처음 조작할 때의 그 느낌 그대로다.
나, 원더보이, 모두 처음 만났던 원래 그대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