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브, 꿈꾸는 야만







체르노브는 오락실에 많이 있었다. 다른 데코 게임처럼 눈길을 끌었지만, 열심히 한 게임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기판을 구매하면서 이상하게 아른거리는 게임이었는데, 쉽게 만날 수 없었다. 그러던 중에 몇 년 전, 이탈리아에서 복사 기판(지금은 팔고 없음)을 하나 구매하고, 한참 지나서 고장 난 정품을 만났다.
제목부터 게임의 분위기가 누가 봐도 체르노빌 원전 사고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 자명했고, 그로 인해 비판의 목소리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희화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인류의 엄청난 불행을 상업적으로 이용해 비극을 상기시키는 것만으로도 문제의 소지는 충분했다. 이런 상황에서 제작자는 카르노브의 연작일 뿐, 우연이라고 궁색하게 변명했지만, 콘솔 메가드라이브 이식에서 다른 스토리 라인을 구성하면서 슬며시 발을 뺐다.
굉장히 성공한 게임은 아니었지만 나름 준수하게 오락실에 깔린 게임이었는데(물론 국내는 거의 복사), 아마도 이런 사정으로 기판 판매에 소극적이었거나, 회수했기에 드물어진 게 아닐까.
게임은 기본적으로 강제 횡스크롤 액션 슈팅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마리오처럼 적을 밟을 수 있고, 앞 뒤로 방향을 바꿔 샷을 할 수 있다. 다양하고 괴상한 무기들이 준비되어 있고, 악몽 같은 풍경과 기괴한 적들이 극단적인 데포르메로 등장해서 그로테스크하지만, 신기하게도 큰 거부감은 없다. 음악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명곡의 향연이다.
게임성으로 명작까지는 아니지만, 수작은 충분히 되는 게임인데, 역시 데코다운 테이스트가 선입견을 불러일으킨다.
상황이 이러해도, 막연하게 데코를 비난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그 시절에는 다들 뭐가 잘못된 것인지 몰랐기 때문이다. 어처구니없게도 그즈음 나 역시 체르노빌 사태를 지켜보며 엑스맨 같은 이야기를 상상했다. 몰랐다고 모든 책임과 상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저의가, 대응이, 이후의 변화가 중요하다. 세상은 천천히 진화했지만, 야만도 그만큼 따라왔다. 세상이 나아갈수록 사라지긴커녕 지성이 만들어 준 탈을 쓰고 더 아프고, 더 예리하고, 더 잔인한 칼날이 됐다. 그래서 무식했지만, 솔직하고, 순진했던 80년대를 딱히 비난하고 싶지 않다.
인간이 나아져봤자, 심연도 그만큼 깊어지기 때문이다.
덧글: 체르노브의 애니메이션이 쓸데없이 부드러운데, 디렉터가 남코 게임, 롤링썬더의 애니메이션에 감명받아서 따라 했다고 한다. 롤링썬더의 애니메이션은 정말 명불허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