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실 기판

카르노브, 네 멋대로 해라

매드 포엣 2024. 8. 26. 18:49


시간이 지나고 보니 카르노브는 데이터이스트의 얼굴일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무모하리만치 파격적이고 도전적인 게임이다. 이상한 물리 엔진은 하면 할수록 재밌다. 다른 사람의 꿈을 들여다보는 듯한 기묘한 캐릭터들은 마치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작품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개성적이면서 자꾸 보고 싶은 중독성이 있다. 음악 역시 익살스럽게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말도 안 되는 아이템들의 쓰임은 도대체 이게 87년에 나온 게임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다채로워서 맵 구석구석을 끝없이 파고들며 고민해야 한다.

당연히 어린 시절에는 눈에 들어오기 힘든 게임이다. 게임의 수준이 아니라 플레이어의 눈이 낮았기 때문이다. 패션으로 따지면 오뜨꾸뛰르 같은 느낌이랄까.

지금도, 앞으로도 클래식으로 남을 작품으로… 버블의 일본이 아니었다면 나올 수 없는 괴물이다. 바로 이런 성취가 그 시절 데이터 이스트의 자부심이었던 것 같다.

체르노브와 함께 반드시 갖고 싶은 데이터 이스트 기판이었는데, 체르노브와 달리 작년에야 간신히 구했다. 그렇게 희귀한 기판은 아닐 텐데, 참 안보였다. 어렵게 구매하고 배송을 기다리는데, 상태 더 좋은 놈이 바로 또 나와서 속을 끓였다. 몇 년 전 같았으면 눈 감고 하나 더 샀을 텐데, 욕심도 적당히, 카르노브처럼 멋진 놈을 나만 가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판과 해외판은 난이도와 화면구성이 다르다. 해외판이 더 어렵고 아이템 창이 아래에 있다. 어느 쪽을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그냥 네 멋대로 즐겨라! 이게 바로 데이터 이스트의 유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