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9. 2. 18:49ㆍ오락실 기판







오락실 게임을 집에서 즐기면서, 가장 아쉬운 점은 역시 체감형 게임기였다. 레이싱 게임의 그 묵직한 핸들과 건슈팅 게임의 건 컨트롤러는 어떤 식으로도 오리지널을 대체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아케이드 기판을 사면서 레이싱 게임은 일찌감치 포기했고, 건슈팅 게임은 필요한 것, 몇 개만 갖추려고 노력했다. 그중에 원픽이었던 하우스 오브 더 데드는 몇 년 전 대림상가에 처음 올라갔을 때 운 좋게 바로 구매했고, 사실 그것으로 건슈팅 게임은 더 이상 구매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많은 기판들을 수집하려 해외를 돌아다니다가, 하오데와 함께 절대 잊을 수 없는 건슈팅을 만나게 됐다.
그것은 남코의 역작 스틸 건너였다. 정확하게 이 게임을 언제 즐겼는지 기억에 남아있지는 않지만, 처음 했을 때 굉장한 충격을 받았던 것만큼은 선명하게 기억한다. 3d 폴리곤 시절 이전에 만들어진 도트 건슈팅 게임으로, 오퍼레이션 울프 같은 게임이었지만, 기술적으로는 비교조차 힘들 정도로 미려한 그래픽에 확대, 축소, 부드러운 스크롤, 세련된 캐릭터 디자인으로 나는 이 게임을 본 순간 바로 시로우 마세무네의 애플시드를 떠올리며 사랑에 빠졌다.
이후 3d 기술이 무르익으며 대단한 건슈팅 게임들이 많이 나왔지만, 스틸 건너 만큼 충격을 받은 게임은 없었다.
그렇게 멋진 스틸 건너였지만, 살 마음은 딱히 없었다. 서술했듯 그것을 집에서 제대로 즐기기는 정말 정말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기판 구매를 자제하며 추스르는 이 시점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그러나 늘 그렇듯 신기하게도, 내 생일에 즈음해 자신에게 선물을 줄 요량으로 기판을 구경하다 스틸 건너 2의 기판을 몇 장 발견했다. 워킹, 낫워킹, 언테스티드가 있었다. 가격은 다 괜찮았지만, 언테스티드는 경매 중이었는데, 즉구가가 워킹과 거의 비슷했다.
무엇보다 언테스티드 물건의 판매자는 스틸 건너에 쓸 수 있는 오퍼레이션 썬더볼트의 건콘트롤러도 경매 중이었다. 경매 시작가는 굉장히 싼 편이었기 때문에, 누구든 가져가겠다 싶었다. 그럼에도 애써 외면하며 경매가 끝날 때까지 신경을 끊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나서 들어갔을 때 아직 그 기판이 팔리지 않았고, 다시 경매 중인 것을 확인했다. 날 기다렸나. 그날 기판을 낙찰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차피 당장 구동하지 못할 짐짝이라고 생각하고, 비싸게 살 생각은 없었다. 그래도 단독 입찰로 살 거라고는 믿지 않았는데, 정말 운이 좋았다. 말도 안 되는 싼 가격에 기판과 총을 모두 낙찰받았다.
얼마나 가격이 쌌던지 국내 세관에서 가격 문제로 통관 보류를 할 정도였다.
기판을 잡는 순간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여러 정보를 찾아봤다. 그리고 어느 정도 기판에 대한 이해가 정리될 때 내게 도착했다. 포장을 깠더니 기판의 메인보드에 기름을 먹은듯한 먼지가 제법 보였다. 혹시 고장난 물건이었을까 의심하면서 물티슈로 한 번 스윽 닦으니 먼지 밑에 기판의 상태가 너무 좋았다. 기대대로 별문제 없이 잘 구동됐다.
오프닝과 데모화면을 보면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놀라울 정도로 현대적인 기술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지나간 세월속에 남겨져 어설프고 후져졌을 것만 같았는데, 마치 어제 발매한 게임처럼 스무쓰하고, 수려한 모습이었다. 그러니까 오래전 사진첩에서 부모님의 젊은 모습을 보는 기분이랄까.
예상보다 훨씬 멋있다. 저만치 잊혀졌던 추억이 아직도 잘 살아있다고 웃는다.
https://x.com/madpoet17/status/1830546059485184464?t=YuYxTWSzkAzXKziSdORfaw&s=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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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el gunner 2 de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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