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가기판(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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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왕기(Altered Beast), 그리스의 늑대인간
오락실의 신작은 주로 등교해 있는 낮에 설치 했다. 그래서 아주 가끔 기사가 와서 고장 난 기기를 고치고 새로운 기판을 설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수왕기가 설치하는 순간에 오락실에 있었다. 동네 아이들이 기판을 바꾸는 동안 옹기 종기 모여서 구경하다가 화면이 들어왔을 때의 환호를 기억한다. 화사한 화면에 커다란 캐릭이 나오는 판타지 게임이었다. 얼핏 보고는 마계촌같은 빠릿빠릿한 게임이기를 바랐으나, 실제로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캐릭터가 큰 만큼 관성이 느껴지는 느릿한 움직이었다. 그래서 단순한 암기 게임에 가까웠지만, 레버를 잡으면 생각만큼 섬세하게 조작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 변신하고 나서의 음악이 아주 멋진 이 게임을 가끔 즐겼고, 간신히 몇 번 원코인 할 정도로 잘하는 편은 ..
2024.12.16 -
PENGO, 펭고는 걔 이름!
펭고는 아주 오랜 시절로 거슬러 가야 만날 수 있는 게임이다. 82년이니까 내 오락실 인생 초창기이자, 실제로도 아케이드 역사가 태초의 큰 문을 열어젖히는 중요한 시기였다. 그 시절에 펭고는 단연 돋보이는 그래픽의 게임이었다. 게임성은 면 클리어 방식의 게임으로 한 스테이지에 있는 적에게 얼음을 밀어 압사시키거나, 근처 벽을 흔들어 기절시켜 잡아 먹는 방식으로 모두 해치우면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간다. 오락실에서 어린 나의 눈길을 끄는 게임이었지만, 당시에는 어려웠기 때문에 자주 즐기던 게임은 아니었다. 그래도 갤러그나 제비우스처럼 언제나 그 시절의 게임을 떠올리면 단박에 떠오르는 멋진 게임이었다. 기판을 수집하면서 몇 번이나 구할 기회가 있었지만 좀처럼 좋은 녀석을 만나지 못하다가 작년에 꽤 좋은 상태의..
2024.06.07 -
원더보이 몬스터 랜드, 나에게 오라 너에게 가마
자주 가는 커뮤니티에 정크 기판 몇 개가 올라왔다. 어지간하면 정크를 사지 않기로 다짐 한 나였지만, 그 리스트는 지나치기 힘들었다. 두 개가 눈길을 끌었는데, 원더보이 몬스터 랜드와 아레스의 날개였다. 원더보이 2는 이미 복사와 정품을 가지고 있지만, 정품의 상태가 좀 아쉬워 하나 정도는 정품으로 더 구하고 싶었다. 아레스의 날개는 니시야마 타카시의 작품이고 어릴적 오락실 여기저기 깔린 작품이라 많은 추억이 있지만, 작품의 완성도가 공포스러울 정도로 허접하고, 가격마저 비싸서 전혀 관심을 안 두던 기판이었는데, 다른 정크들과 꽤나 저렴한 가격에 올라 결국에는 구매했다. 사실 개중에 두 개가 구매 이유라고 해도 9대1 정도로 원더보이 몬스터 랜드가 나의 주된 관심사였다. 그 가격에 원더보이만 구매해도 싼..
2024.04.18 -
곤베의 아임쏘리, 코어해서 미안
몇 년 전에 구매했던 복사 기판이다. 팩맨 같은 도트이터류의 게임이지만, 실제 정치인 풍자를 주제로 만든 만큼 그래픽이 특이해서 해외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것 같다. 반대로 국내에서는 제목처럼 “이주일의 못생겨서 죄송합니다”를 연상시키는 덕에 오락실에 제법 깔렸었다. 무엇보다 적 캐릭으로 등장하는 유명인들, 타모리, 자이언트 바바, 마이클 잭슨, 마를린 먼로가 엄청난 센스의 도트로 그려졌다. 각 캐릭의 특징을 살리는 애니메이션도 아주 일품이고, 그 적에게 잡혀서 죽을 때의 콘셉트도 코믹하다. 그래픽만큼 대단한 게 음악이다. 소위 뽕짝 그러니까 일본으로 따지면 엔카인데, 한 번 들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중독적인 음악이다. 이 게임의 음악가가 코어랜드에서 이어 만든 게임이 청춘 스캔들, 그리고 노보랑..
2023.11.13 -
골든 액스, GOLDEN LIFE
기판을 수집하다 보면 게임 보다 기판 그 자체에 빠져들기도 한다. 기판의 구성과 디자인을 이해하고, 각 회사의 철학을 엿보게 된다. 그러면서 가끔 어렵게 구한 기판을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 즐거운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나 같은 하수야 대책 없이 저질러놓고 나중에 수습하면서 조금씩 배우게 되었지만, 같은 언어로 소통할 수 있는 큰 커뮤니티를 가진 미국, 영국, 일본은 나름의 기준이 이미 서있고, 수준 높은 가이드, 혹은 능력자들에 의해 뉴비들이 진입해 배우는 것도 그다지 힘들지 않다. 그러나 국내 가이드의 수준은 허상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많이 가졌다고 많이 아는 것이 아니며, 오래 했다고 깊이 아는 것도 아니었다. 대다수는 자신의 경험과 지식, 기준이 전무한 상태에서 해외의 입맛을 무비판적..
2023.11.01 -
원더 보이, 원더 이어즈
세가의 원더보이 1은 시대를 초월하는 작품이다. 그야말로 원더풀! 어릴 적 일요일 늦은 저녁에 오락실에 들르면, 언제나 한 귀퉁이에서 가동되던 게임. 물론 나도 많이 즐긴 게임이지만 의외로 매니악한 난이도여서 원코인을 꿈조차 꿔본 적은 없다. 많은 아이들이 달라붙어서 한 게임은 아니지만 근 5년 가까이를 오락실에서 빠지지 않았던 스테디셀러다. 기판을 시작하며 세 손가락 안에 갖고 싶었는데, 구하고 가동해 보니 과연 대단한 게임. 지금 해도 게임의 재미가 하나도 낡지 않았다. 처음엔 복사를 두 번 째는 심플한 한 장짜리를, 마지막으로 이 녀석을 미국에서 구매했는데 40년 가까이 지난 물건이라 접촉에 문제가 있어 그래픽에 약간의 하자가 있지만 급하게 고칠 생각은 없다. 원더보이와 나는 그렇게 함께 늙어간다.
2022.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