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덴 파이터즈 제트, 영광의 끝자락

2024. 9. 21. 11:44오락실 기판

 

세이부 개발의 마지막 거함.
당시 기판 상태를 따지는 편이 아니었는데, 지금 보니 운이 많이 좋았다.


라이덴 파이터즈 시리즈는 세이부의 마지막 아케이드 시리즈였다. 원조 라이덴 시리즈의 영광 이후, 바이퍼 페이즈 원의 실패가 있었고, 다시 한번 라이덴의 명성을 빌려 도전했으나 그 끝은 쓸쓸했다. 
 
완성도만 따지면 좋은 게임이었지만, 미묘했던 시대의 흐름, 라이덴에 기대한 테이스트가 아니었다는 것이 본가 세이부 개발의 종말로 이어졌다. (그러나 라이덴과 같았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하는 사람만 하는 게임이 됐을 것이다. 가불기)
 
라이덴 파이터즈 시리즈는 96년부터 매년 1,2,제트까지 발매하면서 게임성이나 외관상으로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같은 기판이었고, 매년 냈으니 당연한 일이다. 
 
국내에는 1이 많이 깔렸으나 큰 재미를 못 본 탓에 2는 소량 풀렸고, 마지막인 제트는 거의 없었다. 그것은 해외도 마찬가지인지 희소한 제트의 가격이 다른 기판에 비해 훨씬 비싸다. 
 
특이하게 세이부가 말기에 중국시장을 겨냥해 라이덴 2, dx, 라이덴 파이터즈 2, 제트를 저가형 기판으로 발매하는데, 이를 아케이드판에서는 보통 차이나 버전이라고 부른다. 
 
아쉽게도 이 저가형 기판들은 부품 단가 때문인지 아예 빼먹은 부품이 있는데, 특히 사운드가 조악해 게임을 즐기기에 무리가 있는 것으로, 국내에 라이선스로 풀린 기판이 콘텐츠에서 원본과 똑같은 것과는 다르게 원작의 즐거움을 해쳐서, 해외 커뮤니티에서는 꺼리는 제품이다. 
 
재밌는 것은 이 시기에 유독 라이덴 파이터즈 제트만 북미에서 이전의 카트리지가 아니라 싱글보드로 새로 만들어서 재발매를 한다.(라이덴 파이터즈 1의 싱글 보드 버전이 이미 있는 것으로 보아 어쩌면 더 있을지도 모른다. ) 라이덴 파이터즈 제트의 북미판 카트리지를 한 번도 보지 못한 나로서는 아마도 겸사겸사 북미 시장에 마지막으로 도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북미에 풀린 싱글 라이덴 파이터즈 제트는 차이나 버전과는 달리 완전한 보드로, 케이브가 PGM 시스템을 라이센스 받은 후 자신들의 게임 기판은 단일 보드로 변형해서 낸 것과 같은 경우라고 생각하면 된다. 
 
나는 4년 전에(정말 이 시기는 미쳤다) 이 보드를 북미 판매자에게서 구매했는데, 시가보다 많이 쌌다. 나중에 판매자가 자신이 보드 가치를 몰라보고 그 가격에 거래한 게 분통 터진다며 메시지를 보낸 것이 기억난다. 그래도 쿨하게 거래하기로 했으니 약속은 지키겠다고 물건을 보냈는데, 문제는 이 자식이 보드를 아무런 완충제 없이 그냥 얇은 박스만 싸서 편지처럼 보내는 바람에 까보니 당연하게도 고장이 나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황당한 일이다. 
 
다행히 큰 고장이 아니어서 잘 고쳐서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긴 하다. 이제 보니 기판의 외관도 아주 준수한 게 잘 구매했다. 고장났던 기판은 노파심에라도 가끔 걸어서 테스트하기 때문에 이 기판은 종종 꺼내서 플레이한다. 
 
게임은 그래픽, 음악, 조작감, 플레이 가능한 다양한 기체등 나무랄 부분이 없을 만큼 잘 만들었다. 도트 세이부의 마지막 혼신이 들어간 수작이라는데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라이덴1,2,dx가 그랬고 라이덴 파이터즈 1,2,jet도 그렇듯, 대단한 성공 뒤에 자가복제 할 수밖에 없는 상업적 피조물들의 운명은, 영광이라는 탑 아래 드리워진 그림자처럼, 밤이 짙어질 수록 더 잊어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