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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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노브, 네 멋대로 해라
시간이 지나고 보니 카르노브는 데이터이스트의 얼굴일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무모하리만치 파격적이고 도전적인 게임이다. 이상한 물리 엔진은 하면 할수록 재밌다. 다른 사람의 꿈을 들여다보는 듯한 기묘한 캐릭터들은 마치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작품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개성적이면서 자꾸 보고 싶은 중독성이 있다. 음악 역시 익살스럽게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말도 안 되는 아이템들의 쓰임은 도대체 이게 87년에 나온 게임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다채로워서 맵 구석구석을 끝없이 파고들며 고민해야 한다. 당연히 어린 시절에는 눈에 들어오기 힘든 게임이다. 게임의 수준이 아니라 플레이어의 눈이 낮았기 때문이다. 패션으로 따지면 오뜨꾸뛰르 같은 느낌이랄까. 지금도, 앞으로도 클래식으로 남을 작품으로… 버블의 일본이 아니..
2024.08.26 -
체르노브, 꿈꾸는 야만
체르노브는 오락실에 많이 있었다. 다른 데코 게임처럼 눈길을 끌었지만, 열심히 한 게임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기판을 구매하면서 이상하게 아른거리는 게임이었는데, 쉽게 만날 수 없었다. 그러던 중에 몇 년 전, 이탈리아에서 복사 기판(지금은 팔고 없음)을 하나 구매하고, 한참 지나서 고장 난 정품을 만났다. 제목부터 게임의 분위기가 누가 봐도 체르노빌 원전 사고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 자명했고, 그로 인해 비판의 목소리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희화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인류의 엄청난 불행을 상업적으로 이용해 비극을 상기시키는 것만으로도 문제의 소지는 충분했다. 이런 상황에서 제작자는 카르노브의 연작일 뿐, 우연이라고 궁색하게 변명했지만, 콘솔 메가드라이브 이식에서 다른 스토리 라인을 구성하면서 슬며시 발을..
2024.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