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케이드 기판(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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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로스, 와드너의 숲은 설렁설렁킹
토아플랜에서 만든 액션 게임이다. 음악 및 게임 디자인에서 간판인 유게 마사히로나, 우에무라 타츠야가 제작한 작품이 아니라서 그들의 슈팅 게임들과는 색채가 사뭇 다르다. 어릴 적에는 당연히 제작사 같은 건 몰랐고, 그래도 나름 재미있고 쉬워서 원코인 하며 즐겼던 게임이다. 그 시절, 조그만 동네 오락실에서 막혔던 기믹을(물론 지금 보면 너무 시시한 트랩이지만 ㅋㅋ) 혼자 해결해서 꽤 기뻐했었다. 당시에는 찐빵 같은 놈이 설렁설렁 걸어 다니는 게임이라 그래픽이 딱히 인상적이진 않았는데, 지금 와서 브라운관을 통해서 꼼꼼히 보니 굉장히 공을 들인 아트웍과 애니메이션이 매력 넘친다. 토아플랜 게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음악 역시, 이전의 슈팅 게임과는 다른 나른하고 몽환적인 사운드가 일품이다. 조작감은 우수하고..
2024.01.10 -
곤베의 아임쏘리, 코어해서 미안
몇 년 전에 구매했던 복사 기판이다. 팩맨 같은 도트이터류의 게임이지만, 실제 정치인 풍자를 주제로 만든 만큼 그래픽이 특이해서 해외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것 같다. 반대로 국내에서는 제목처럼 “이주일의 못생겨서 죄송합니다”를 연상시키는 덕에 오락실에 제법 깔렸었다. 무엇보다 적 캐릭으로 등장하는 유명인들, 타모리, 자이언트 바바, 마이클 잭슨, 마를린 먼로가 엄청난 센스의 도트로 그려졌다. 각 캐릭의 특징을 살리는 애니메이션도 아주 일품이고, 그 적에게 잡혀서 죽을 때의 콘셉트도 코믹하다. 그래픽만큼 대단한 게 음악이다. 소위 뽕짝 그러니까 일본으로 따지면 엔카인데, 한 번 들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중독적인 음악이다. 이 게임의 음악가가 코어랜드에서 이어 만든 게임이 청춘 스캔들, 그리고 노보랑..
2023.11.13 -
하이퍼 올림픽 84, 불의 노래를 들어라
80년대 오락실에 가면 늘 있던 초 히트 게임으로 이후 이런 유형의 경쟁 게임 틀을 완성한 대단한 게임이다. 많은 아이들이 했고, 아무도 없던 오락실에서 홀로 울리던 반젤리스의 불의전차 테마는 절대 잊을 수 없는 BGM이었다. 내가 그렇게 즐기던 게임은 아니었지만, 오락실에 끼친 영향은 엄청났다. 손가락을 엇갈리며 고속으로 두들기는 기술이 개발됐고, 웃을 수밖에 없던 광경들, 가차의 껍데기를 불이 날 정도로 버튼에 비비거나, 급기야는 연타를 위해 줄톱이 등장해 꼬맹이들이 줄톱을 들고 오락실에 입장하는 블랙 코미디가 연출됐었다. 그렇게 피지컬적으로 연타를 하는 단순한 게임성이 내 마음을 설득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게는 멀찍히 뒤에서 코웃음 치며 구경할 뿐이었다. 그러나 오락실 기판을 구매하면서 당연히 그 시..
2023.10.16 -
사이코 솔저, 소년 소녀를 만나다
중학 시절 어느 날, 하교하며 들른 밍키 오락실에는 처음 보는 게임이 있었다. 신작 게임이라니! 매 달 기다리며 사 보던 잡지나 신간 만화처럼, 그렇게 신나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푸른 색감이 신비롭고, 멋진 그래픽의 게임이었다. 망설임 없이 스타트 하자 게임에서 만화영화처럼 주제가가 흘러나왔다. 그 음악이 얼마나 좋냐면, 아직도 이 음악을 들으면 설레서 이 게임을 처음 본 그 시간과 공간으로 돌아가는 기분이다. 소위 레트로 게임이라는 취미에 빠져들면서 8비트 16비트 콘솔에 추억이 없던 내게는 오로지 오락실 게임만이 레트로 게임이었다. 그래서 그것들을 이식한 콘솔 게임을 사다가 에뮬을 하고, 결국에는 기판에 발을 들였다. 기판을 위해 가입한 카페에 내 소개를 하면서 올렸던 게임 구동 사진이 에뮬로 돌린..
2023.09.24 -
윌로우, 영화가 있던 오후
윌로우란 게임에 추억은 없었다. 오히려 윌로우 영화에는 추억이 있다. 중학교 1학년에 만난 친구가 있었는데, 집이 제법 큰 광고집이었다. 아버지가 디자인을 위해 신기한 해외 잡지를 집에 많이 가져다 두는 바람에 그걸 보고 자란 친구의 센스는 대단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하교 후에 그 녀석 집에 가는 것이 일상이 됐고, 자연스럽게 나도 친구를 따라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손의 재능 차이는 참으로 컸다. 내가 유치원생이면 친구는 고등학생 정도의 그림을 그렸다. 대신 나는 다독과 많은 영화, 그림을 감상하며 시선의 높이를 올렸다. 잘 그리고 싶은 욕망은 인문학에 대한 열망으로 커져서 청소년기의 나는 고민과 사색에 집중했다. 눈이 높아지자 손이 조금씩 따라갔지만, 더딘 성장은 괴로웠다. 차라리 눈이 낮았으면 어땠..
2023.09.08 -
1943, 풍운아 오카모토 요시키
오카모토 요시키가 4년 후에 은퇴할 것을 발표했다. 유튜브에서 그는 살짝 눈시울이 젖어 있었고, 무언가를 숨기는 것 같았지만, 단호하게 4년 후의 생일날에 게임계를 완전히 은퇴할 것이라고 말했다. 게임계에 이런 은퇴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가 만들었던 뭐라도 꺼내 플레이하고 싶어졌다. 그에 대해 미야자키 하야오의 잦은 은퇴와 번복을 떠올리며 비웃는 사람이 있었지만, 대다수는 그의 게임업계에서의 업적과 영향을 찬양하고, 아쉬워하고, 나중에도 유튜브를 통해서 지금처럼 소통해 줄 것을 바랐다. 나는 오카모토 요시키가 천재라고 생각한다. 천재 디자이너였으며 타고난 리더였다. 그로 인해 수많은 다른 천재들이 캡콤을 통해 세상에 소개됐다. 후나미즈 노리타카, 니시타니 아키라, 야스다 아키라, 미카미 신지 같은 ..
2023.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