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16. 11:02ㆍ오락실 기판







오락실의 신작은 주로 등교해 있는 낮에 설치 했다. 그래서 아주 가끔 기사가 와서 고장 난 기기를 고치고 새로운 기판을 설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수왕기가 설치하는 순간에 오락실에 있었다. 동네 아이들이 기판을 바꾸는 동안 옹기 종기 모여서 구경하다가 화면이 들어왔을 때의 환호를 기억한다.
화사한 화면에 커다란 캐릭이 나오는 판타지 게임이었다.
얼핏 보고는 마계촌같은 빠릿빠릿한 게임이기를 바랐으나, 실제로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캐릭터가 큰 만큼 관성이 느껴지는 느릿한 움직이었다. 그래서 단순한 암기 게임에 가까웠지만, 레버를 잡으면 생각만큼 섬세하게 조작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
변신하고 나서의 음악이 아주 멋진 이 게임을 가끔 즐겼고, 간신히 몇 번 원코인 할 정도로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신기하게도 쿼텟 2를 좋아했던 친구 녀석은 수왕기도 좋아하고 잘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캡콤 게임을 좋아하고 비교적 잘 했던 것만큼, 녀석은 세가의 게임이 맞았던 것 같다. 테디보이 블루스도 자주, 잘 했었다.
기판은 초기에 싱크가 고장난 것을 꽤 싸게 구매했고, 수리도 간단한 문제라 수월했다. 사운드가 암호화된 기판이라 패치를 해줘야 하는데, 아직 살아있어서 그냥 사용 중이다. 1988년에 나온 기판의 배터리가 2024까지 버텨주는 게 신기하다. 이런 오리지널의 가치를 살리고 싶어서 차라리 배터리를 갈고 싶은데, 손이 많이 가고 지저분해질까 고민이다.
다른 시스템 16B 기판인 시노비와 이스와트도 배터리가 살아있어서, 빨리 결정하는 게 좋겠다.
인생 역시 본연의 가치를 지키면서 살아가는 게 쉽지 않다. 옳든 그르든 수많은 패치를 통해 잘 사는 법을 찾아야 하니까.
언제 죽을지 모르는 낡은 기판을 보니 별 생각이 다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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