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9. 9. 12:05ㆍ오락실 기판


꼬마시절 오락시절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사랑했던 게임이다. 그럼에도 기판을 구매하는 동안 몇 번이나 국내 판매자의 물건을 보고도 그냥 지나쳤었다. 아마도 초기에는 다른 더 사고 싶은 물건들이 있었을 것이다. 이를테면 CPS1, CPS2 같은 것 말이다.
여하튼 기판 수집이 무르익으면서 갖고 싶은 기판 레벨 2 정도로 등급이 오르면서 천천히 해외의 매물을 구경했다. 처음에는 복사도 마음에 뒀다. 이 시절의 기판은 복사와 정품의 차이가 롬씰이나 기판에 새겨진 제작사 로고정도였기 때문에 플레이에는 아무 지장이 없어서다.
그러나 늘 그렇듯 구력이 쌓이면서 정품과 복사의 가격차가 생각만큼 크지 않다는 걸 알게 됐고, 뭣 보다 책정한 예산안에서 얼마든지 좋은 기판을 구매할 수 있을 정도로 봄잭은 가격이 비싸지 않았다.
그렇게 몇 년 전에 영국에서 판매하는 외관이 꽤 좋은 녀석을 예상보다 정말 싼 가격에 그러나 계획보다 비싼 운임료를 주고 구매했는데, 한참이 지난 지금에야 기판을 상가에서 고쳐왔다. 생각보다 증상이 심각했는데, 다행히도 잘 고쳤다.
게임은 지금 해도 정말 잘 만든 게임이다. 무엇보다 점프의 높이와 거기서 떨어지는 속도를 조절하는 감각이 탁월하다. 그래서 처음 하는 사람도 전혀 위화감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조작감이 일품이다.
최초 게임은 유니버셜의 미스터 도를 벤치마킹하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한다. 아마도 디스터 도의 디렉터인 우에다 카즈토시가 테칸으로 이적하면서 시작된 일일 것이다. 거기에 공동 디렉터인 미치타카 스루타는 이후에 솔로몬의 키를 만드니 그야말로 드림팀이었던 셈이다.
이 시절에 원더보이 2 몬스터 랜드를 제작했던 웨스톤의 니시야마 류이치와 사카모토 신이치가 모두 테칸에 있었다. 유니버셜에서 테칸, 원더보이로 이어지는 나름의 커넥션이 있다고 느껴진다.
천재들이 만든 게임인 만큼 지금 해도 완성도가 놀랍고 재미있다. 물론 게임의 볼륨이 크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 지금 몇 시간을 붙잡고 할 가치가 있냐고 반문하면 모두에게 그렇다고 웅변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같은 사람에게는 도전 할 가치가 충분하다. 뭣보다 할 때마다 행복한 기분이 들어 좋다.
한 편 봄잭의 기판은 유명 곡을 BGM으로 사용했다. 첫 스테이지 음악은 우리나라에는 호호아줌마로 알려진 애니송을 편곡해서 넣었고, 순서대로 이후 스테이지에는 비틀즈의 노래가 나온다. 당연하게도 저작권 문제로 이식작에는 음악이 바뀌었다.
나보다 큰 형과 어른들이 빼곡한 오락실에서 까치발로 서서 봄잭을 구경하던 시절이 여전히 생생하다. 그날 앉아서 오락을 하던 형은 굉장히 잘하는 사람이었다. 알다시피 봄잭에는 게임 중에 보너스로 보통은 점수인 파란색 B 메달 아이템이 굴러 떨어지는데, 노란색 E가 쓰여있으면 보너스 1UP이다. 그 노란색 메달만 나와도 환호성이 살짝 나오는데, 그날은 붉은색 S가 쓰여있는 메달이 떨어졌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케이드 게임 역사에 정말 유래없는 아이템인데 붉은색 S는 보너스 한 판 더, 그러니까 1 coin이다.
그 메달이 뜨면 근처의 갤러리들이 환호성과 탄식을 한꺼번에 지르곤 했다. 봄잭은 발색이 정말 발군이어서, 그날 처음 봤던 그 붉은색과 흥분의 도가니였던 오락실이 모두 단심으로 평생 마음에서 잊히지 않을 추억이 되었다.
그 모든 순간이 지나고 혼자 텅 빈 저녁의 오락실에 앉아서 서툴게 봄잭을 하던 날, 내게도 붉은색 메달이 나올까 기대했지만, 어렵게 나온 노란색 1UP 메달조차 처음 본 나머지 등신같이 덜덜 떨면서 먹지 못하고 죽어 울고불고 이불킥 하던 것도...이제는 웃을 수 있는 그리운 시절이다.
살면서 붉은색 메달 같은 스페셜한 행운이 당첨돼 인생을 리셋할 꿈같은 기회가 있다면 좋겠지. 그러나 봄잭의 bgm처럼 평온한 삶의 순리 속에서 최선을 다해 점프했다면, 꼭 최고 득점이 아니라도, 어쩌다 실수를 하더라도, 만족하며 게임오버를 맞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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