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6. 6. 19:22ㆍ오락실 기판




내 오락실 인생에서 대학시절은 몇 개의 캡콤 게임과 대다수의 세가 게임으로 점철되어있다. 그 중에서도 대전 게임인 버추어 파이터가 거의 모든 지분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계속 깨지다가 기분이 상해서 도저히 대전을 하기 싫을 때나 아예 상대가 없을 때 했던 게임이 바로 에스프레이드였다.
에스프레이드 전 후로도 케이브 게임을 오락실에서 본 기억은 선명하지만, 돈파치나 도돈파치를 즐겼던 추억은 전혀 없다. 그만큼 적어도 내 오락실 루트에서는 인기가 없는 게임이었다. 어차피 다른 사람하는 것과 별개의 게임 라이프를 즐겼지만, 그래픽이 맘에 들지 않아서 더 안했다.
에스프레이드가 돈파치류와 그래픽이 크게 다른 점은 없었지만 기체가 아니라 인간형 캐릭터가 나오고 중간 중간 컷신이 들어가 있는 게 내 맘을 사로 잡았다. 사실 내가 캡콤 게임을 좋아했던 것도 다른 토아플랜류의 슈팅과는 달리 일러스트를 넣어 상상력을 자극, 게임에 좀더 몰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튼 그렇게 버파를 하다 짬짬히 하던 에스프레이드는 당시로서는 상상도 못한 탄을 쏟아냈는데, 지금에야 그런 장르를 탄막슈팅이라 일컫지만 그 시절에는 그저 생경한 게임이었다. 어느날엔가는 고등학교 동창친구들과 오락실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내가 이 게임을 하는 것을 보고는 나중에 술자리에서 뜬금없이 한 녀석이 “야 아까 그 오락실 게임말야. 어떻게 그런 총알을 쏘고, 너는 그걸 피했냐?” 라고 말할 정도로 인상적이었던 거다.
시간은 흘러 이젠 아무도 안하던 케이브의 게임이 슈팅의 대명사가 되고, 그들의 게임들이 시장에서 고가로 거래되는 이 시대에, 몇 년 전 처음 기판을 구하면서 이 게임을 일찍 만난 것은 어쩌면 행운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거의 모든 케이브 게임은 훌륭하기 때문에 매니아들이나 콜렉터들이 케이브의 게임에 경도되는 것은 이해하지만, 막상 해 보면 다른 게임도 그렇듯 케이브의 게임이 모든 게이머에게 맞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나처럼 추억과 플레이를 위해서 구매하는 입장에서는 지금의 현실이 그렇게 달갑지만은 않다.
집은 사람이 살기위해 짓고, 낙하산은 펼쳐지기 위해서, 게임은 플레이하기 위해 만들어 졌다면 그 쓰임대로 사람들이 찾았으면 좋겠다.
대학교 다닐 때 에스프레이드를 했던 오락실의 이름은 "패스파인더"였다. 나는 아직도 그 이름을 잊지 않았다. 그 때의 나는 좀 불안정하고, 외로웠지만, 가끔은 이 게임을 하면서 고민을 잊을 수 있었다. 케이브는 장르의 개척자였다. 이미 죽어가는 슈팅 장르를 다양한 변주와 실험을 통해 성공적인 예술 작품으로 이끌었다.
한 번 사는 인생 , 되돌릴 수 없고, 미리 알고 갈 수도 없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스스로 개척자이다.
이 기판은 그런 내 삶의 편린이자 증거로, 게임사에서도 중요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운명처럼 다시 찾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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