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6. 7. 15:55ㆍ오락실 기판




펭고는 아주 오랜 시절로 거슬러 가야 만날 수 있는 게임이다. 82년이니까 내 오락실 인생 초창기이자, 실제로도 아케이드 역사가 태초의 큰 문을 열어젖히는 중요한 시기였다. 그 시절에 펭고는 단연 돋보이는 그래픽의 게임이었다. 게임성은 면 클리어 방식의 게임으로 한 스테이지에 있는 적에게 얼음을 밀어 압사시키거나, 근처 벽을 흔들어 기절시켜 잡아 먹는 방식으로 모두 해치우면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간다.
오락실에서 어린 나의 눈길을 끄는 게임이었지만, 당시에는 어려웠기 때문에 자주 즐기던 게임은 아니었다. 그래도 갤러그나 제비우스처럼 언제나 그 시절의 게임을 떠올리면 단박에 떠오르는 멋진 게임이었다. 기판을 수집하면서 몇 번이나 구할 기회가 있었지만 좀처럼 좋은 녀석을 만나지 못하다가 작년에 꽤 좋은 상태의 기판을 수집했다. 물론 언테스티드라 가격도 저렴했다. 언테스트라도 기대했지만 기판은 구동되지 않았다. 수리를 위해 이것저것 만지다가 암호화되어 있던 cpu를 뽑는데 다리가 바사삭하고 부러졌다. 놀랍게도 그 다리가 ic위에 하나하나 따로 결합되어 있는 cpu였는데, 그게 세월이 흐르면서 다 떨어져 나간 것이다. 일일이 납땜을 할까 생각했지만, 암호 해독된 롬이 있기에 나중을 기약하며 넣어둔 기판이었다.
그러다 최근 이피롬을 몇 개 구매하면서 생각난 김에 새 cpu와 해독된 롬을 구워서 테스트했더니 다행히도 구동에 성공했다. 역시 오래된 cpu 다리의 접촉에 문제가 있던 모양이다. 그렇게 한 시름 놓고 게임을 테스트 겸 즐기는데, 놀라운 사실을 하나 알게 됐다.
펭고하면 가장 유명한 것이 그 중독적인 “팝콘”이라는 팝송을 무단 도용한 BGM인데, 사실 나는 펭고라는 게임은 기억하면서도 그 음악만큼은 전혀 기억에 없었다.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음악인데 어째서 기억하지 못했을까 참 의문인 부분이었다.
그런데 고쳐서 구동한 펭고의 bgm이 팝콘이 아니다! 어라 왜 팝콘이 아니지? 하면서 검색을 좀 했더니, 나처럼 펭고를 다시 하며 오히려 음악이 팝콘이어서 놀랐던 사람들이 좀 있더라. 그들의 기억 속에 펭고의 음악이 팝콘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조금 더 글을 찾아 유추해 보니. 북미에 펭고를 처음 론칭할 때는 정황상 팝콘이었다. 그러나 저작권 문제가 야기되자, 부랴부랴 다른 음악으로 세가에서 직접 패치를 해서 판매하지 않았을까싶다.
그리하여 내가 어린 시절에 봤던 펭고도 bgm이 팝콘이 아니었다고 추측한다. 그래서 몇 년 전에 펭고를 다시 찾아봤을 때 너무 중독적이고 단순해서 잊을 수 없는 팝콘의 사운드를 전혀 기억하지 못한거지. 또 하나의 의문이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게임은 지금 해도 굉장히 어렵다. 펭고는 묵직하고 느릿한 움직임인데 적들은 꽤나 빠릿하고 전략적으로 움직여서 좀처럼 도망가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지금도 도전할 가치가 있는 게임이다. 아케이드의 여명기에는 이렇게 엄청난 게임들이 있었다.
단순한 도트에는 영원불멸의 아트를, 직관적인 게임플레이에는 끝없는 도전의 가치를 꿈꿨던 것이다. 그리고 그 정신이 오락실 게임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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