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 액스, GOLDEN LIFE

2023. 11. 1. 13:04오락실 기판

 

게임성, 상태, 역사적 가치, 보존 가능성 무엇 하나 빠지지않는 완벽한 기판이다.
밑장까지 완벽.
배터리가 필요없는 버전.

 

기판을 수집하다 보면 게임 보다 기판 그 자체에 빠져들기도 한다. 기판의 구성과 디자인을 이해하고, 각 회사의 철학을 엿보게 된다. 그러면서 가끔 어렵게 구한 기판을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 즐거운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나 같은 하수야 대책 없이 저질러놓고 나중에 수습하면서 조금씩 배우게 되었지만, 같은 언어로 소통할 수 있는 큰 커뮤니티를 가진 미국, 영국, 일본은 나름의 기준이 이미 서있고, 수준 높은 가이드, 혹은 능력자들에 의해 뉴비들이 진입해 배우는 것도 그다지 힘들지 않다. 
 
그러나 국내 가이드의 수준은 허상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많이 가졌다고 많이 아는 것이 아니며, 오래 했다고 깊이 아는 것도 아니었다. 대다수는 자신의 경험과 지식, 기준이 전무한 상태에서 해외의 입맛을 무비판적으로 가져와서는 자신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에 경도되어 호도하고 있달까.
 
물론 국내에도 훌륭한 기판 게이머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다른 이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고, 배운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냥 이 업계 전반의 수준이 역사와 열정에 비해 전체적으로 낮은 것이 아쉽다는 말이다. 지금 국내의 커뮤는 서로 도우며 함께 성장해 가는 과정에 있다.
 
하여간 그런 와중에 지금 뼈 아프게 와닿는 조언이 있다면 돈을 조금 더 주더라도 상태가 좋은 놈을 사라는 것이었다. 기판을 시작하고 눈이 휘둥그레져서 아무거나 주워 담을 때를 돌이켜 보면, 애정이 있든, 추억이 있든, 상태가 어떻든 그냥 싸고 내게 없는 기판이라면 아무 기판이고 집어 들었던 것 같다. 
 
특히 고장 난 기판을 도박하는 기분으로 구매한 것이 꽤 있었는데, 지금은 그 돈이 꽤 아깝다. 고쳤냐면, 고친 기판이 훨씬 많기는 하다만, 이제 와서 그 기판들을 바라보면서 드는 생각이 고장 난 물건에 쏟아부었던 시간과 에너지, 수리비를 차라리 좋은 기판을 진득하게 기다리다 쓰는 게 훨씬 나았을 거란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깨달음도 다 내가 이리저리 부딪히고 깨져서 알게 된 것이니, 지금 과거의 내게 돌아가서 충고한들 그 말을 듣겠는가. 그 정도의 그릇이었다면, 이미 지금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 되어있겠지.
 
황금 도끼는 국내에서 대히트한 게임이었지만, 정작 나는 그렇게 많이 하지는 않았다. 이 게임이 왠지 저학년용 게임으로 보였는데, 실제로 동네 오락 못하던 꼬맹이들도 다 이게임을 원코인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싫어하는 게임은 아니었지만, 당시 내가 뭔가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렸는지, 이유를 잘 모르겠다. 
 
게임은 지금 해보니 상당히 독특한 구석이 있는데, 바로 조작감이었다. 그냥 빠릿하게 움직이는 게 아니라 약간의 관성이 느껴지는 조작감인데, 이게 생각보다 중독성이 있더라. (즐겨보는 일본의 기판 유튜버도 이 부분을 지적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메가드라이브 버전은 이러한 관성이 없다고 한다. 나는 메가드라이브 버전을 해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 황금 도끼 제작진의 전작이 수왕기인데, 그 게임 역시 조작감에 관성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픽은 오히려 지금 보니 더 취향에 맞다. 마냥 이쁘기만 한 그림보다는 회화느낌 물씬 나는 서양 판타지 디자인이라 봐도 봐도 안 질린다. 제작진이 이 게임을 만들 당시 반지의 제왕등을 많이 참조했다는데, 피터잭슨의 작품이 나오기 훨씬 전이니 클래식 그 자체를 레퍼런스로 했다는 게 참 기특하다. 
 
기판은 몇 년 전, 기판을 시작할 무렵 해외에서 구매했는데, 판매자의 말에 의하면 자신의 물건이 아니라 아버지의 물건이라고 했던 것 같다. 세 개 정도 구매했고, 기판의 상태는 모두 새것처럼 좋았다. 그중에서 압권은 바로 이 황금 도끼 기판이다. 심지어 이 기판에는 악명 높은 세가의 자살 배터리조차 없어서 앞으로도 패치 없이 이대로 오리지널로 보존할 수 있어 더 가치가 있다. 
 
사실 최근 이 기판을 몇 년 만에 꺼내 보면서 아까의 감상이 진하게 들었다. 그때는 뭣도 모르고 기판을 마구 구매했지만, 마음과 인생에 남는 것은 바로 이런 기판이다. 상태 고만고만한 계획에도 없던 기판을 싸다고 눈에 불을 켜고 쫓아다니며 몇 장씩 구매한들, 남들이 레어라고 추켜세운다고 감흥 없는 것을 자기 최면까지 걸면서 이런 저런 이유를 만들어 산들 그게 무슨 의미일까. 내게 주어진 시간과 공간은 유한하다. 얼마의 금액 차이는 시간이 지나면 채워지고, 같은 기판이 많아 봐야 어차피 그 게임은 한 번에 한 장밖에 걸지 않으며, 내가 모르던 레어는 레어일수밖에 없는 게임이었다는 진실, 자신은 아주 평범한 입맛의 사람이라는 당연한 결과만 얻게 되는 것이다.

따듯한 햇살을 받으며 아내와 걷는 것, 혹은 조용한 오후에 기판을 만지는 것은 모두 소중한 경험이다. 나는 좋은 것, 의미있는 것을 저울질하며 살고 싶다.

견딜 수 없는 물욕에 휩쓸려 아무 생각 없이 남들을 따라가면서, 시간과 돈을, 무엇보다 내 열정을 더는 낭비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