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 풍운아 오카모토 요시키

2023. 8. 24. 19:04오락실 기판

 

몇년 전, 북미에서 구매했다. 상태는 캡콤 스티커가 아쉽지만 무난하다.
북미에서 샀는데, 이상한 글리치가 있어서 롬을 체크해보니 놀랍게도 메인 프로그램 중 일부가 복사기판 롬이었다. 아마도 북미 오락실에서 구동하려는데,일본판이니 번역을 위해 복사롬을 사용했던 것, 당연히 당시에는 그편이 빨랐을 것이다.

 

야마토 2페이즈 도전하자 마자 죽음.
도전하자 마자 죽음 2. 40분이나 했는데 바로 죽어서 굉장히 빡침.
캡콤의 초기 여성 사운드 디렉터 모리 아야코에게 헌정한 대형 기체 보스 이름 아야코. 그녀의 덩치가 컸다고 한다.

 
오카모토 요시키가 4년 후에 은퇴할 것을 발표했다. 유튜브에서 그는 살짝 눈시울이 젖어 있었고, 무언가를 숨기는 것 같았지만, 단호하게 4년 후의 생일날에 게임계를 완전히 은퇴할 것이라고 말했다. 게임계에 이런 은퇴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가 만들었던 뭐라도 꺼내  플레이하고 싶어졌다.
 
그에 대해 미야자키 하야오의 잦은 은퇴와 번복을 떠올리며 비웃는 사람이 있었지만, 대다수는 그의 게임업계에서의 업적과 영향을 찬양하고, 아쉬워하고, 나중에도 유튜브를 통해서 지금처럼 소통해 줄 것을 바랐다. 
 
나는 오카모토 요시키가 천재라고 생각한다. 천재 디자이너였으며 타고난 리더였다. 그로 인해 수많은 다른 천재들이 캡콤을 통해 세상에 소개됐다. 후나미즈 노리타카, 니시타니 아키라, 야스다 아키라, 미카미 신지 같은 사람들이 그런 존재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은퇴와 복귀가 왜 우스개거리인지 모르겠다. 그가 단 한 번이라도 실망스러운 작품을 내놓은 적이 있나. 그의 모든 작품이 위대하다.(사실 딱 하나 아쉬운 작품은 있다.) 영화사에 이 정도의 걸작을 끊임없이 낸 감독은 거의 없다. 미야자키 정도로 성공한 거물이 뭐가 아쉬워서 다시 업계로 돌아오겠나. 그의 남은 모든 여정이 인류에게는 커다란 영감이고 유산이다. 
 
객관적으로 오카모토의 게임업계에서 공헌이 미야자키 하야오에 견줄 정도일지 모르겠지만, 주관적으로는 충분히 그럴만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오카모토 요시키를 좋아하는 것은 몇 번 말한 적 있지만, 왜 좋아하는지 알게 된 것은 최근 그의 게임 철학을 귀동냥하면서였다.
 
자이러스가 갈라가를 벤치마킹하면서 갈라가의 구석에 몰려 죽는 불합리함이 싫어, 360도 회전하는 게임 디자인을 했다는 것은 이미 말했지만, 캡콤으로 넘어와서 오카모토가 만들었던 대히트 슈팅 게임 [1942]의 위기 시 b버튼을 눌러 회전하는 장치는 슈팅게임 역사상 최초로 만들어진 회피 기믹이었다. 이 장치로 인해 다른 슈팅 게임에도 비로소 위기를 모면하거나 적에게 큰 대미지를 입힐 수 있는 폭탄이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은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내가 슈팅 게임을 하면서 유독 싫어했던 것이 2회차, 3회 차 무한으로 도는 것이었는데, 그것 역시 그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은 그런 디자인을 싫어하고, 1주 차에 완전한 엔딩을 갖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당연히 이 말을 들었을 때 정말로 기뻤다. 아무 이유 없이 우연히 오카모토 요시키의 게임을 좋아했던 것이 아니라 그의 철학을 나의 시선이 찾았고 , 이해했고, 공감했다는 것이다!
 
1943은 그의 아케이드 이력에서도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던 1942의 속편이었기 때문에 신경 쓸 수밖에 없었는데, 실제로는 이 게임이 사이드 암스와 동시에 만들던 게임이라 오카모토가 완전히 감독한 게임은 아니었다. 대 다수 작업을 후나미즈 노리타카가 했고, 그는 감수하는 정도의 일을 했던 것 같다. 동시에 만들었던 만큼 두 게임은 아주 비슷한 구성이 많았지만, 1943에 조금 더 힘을 쏟느라 좋은 아이디어가 그쪽으로 가는 바람에 사이드 암스의 완성도가 다소 부족했다고 그가 말했다. 
 
나는 이 게임을 어릴 적에 했었는데, 아마도 중학생 시절이었다고 생각한다. 라스트 스테이지가 아주 어려워서 원코인 엔딩을 자주 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건스모크처럼 한 번도 원코인을 못 한 게임은 아니었다. 
 
전반적으로 라스트 스테이지를 제외하면 난이도가 낮고, 40분 정도의 긴 플레이 타임을 필요로 했다. 덕분에 하교하고 오락실에서 이게임을 하면 오락실이 거의 문 닫을 시간까지 게임을 했기 때문에, 처음 엔딩을 봤을 때, 아무도 없는 오락실의 고요가 아직도 기억난다. 
 
실컷 사랑하고 헤어지면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작아질까. 나는 이 게임에 그렇게 간절하지 않았다. 그러나 기판 취미 생활은 자연스럽게 1943 기판을 만나게 했다. 그리고 처음 기판에 전원을 넣었을 때, 웃음이 났다. 그래 이거지! 절묘한 완성도였다. 아름다운 푸른색이며, 행복한 조작감, 부드러운 사운드, 귀여운 아이템들...
 
앞으로 4년 남았지만, 친구처럼 내 성장기에 언제나 함께 했던 수많은 예술 작품을 만들어 준 오카모토 요시키 씨의 은퇴를 축하한다. 불합리한 틀을 깨뜨리고, 제작자, 유저, 업주 모두가 행복할 게임을 만들겠다는 당신의 철학은 바다를 건너, 아주 작은 어촌 도시의 어느 아이에게도 전달됐다. 
 
그리고 그 아이는 어른이 되어 이렇게 말한다.
 
오카모토 요시키의 길은 틀리지 않았다. 아니, 그는 언제나 아주 옳았다. 그가 캡콤이었고, 캡콤이 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