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1980년대

2023. 3. 18. 12:28오락실 기판

 

아직도 총천연색, 나의 80년대

나는 아주 오랫동안 어제가 1986년 어느 날인적이 있었다. 그 시계는 한참 멈춰있다가 다시 흐르기 시작했는데, 아마도 지금의 아내를 만나면서였다고 생각한다. 
 
멈춰있던 어제의 1986년은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나는 그 시간에서 떠나고 싶지 않았다.
 
아는 게 많다고 우쭐대는 어른이 되고 신비로움이나 환상에 사로잡히는 일은 없다가, 몇 년 전부터 예전 물건들, 레트로를 접하면서 문득 어린 시절 느꼈던 막연한 동경과 평온함을 동시에 느끼는 일이 잦아졌다. 이런 걸 행복하다고 하는 걸까.
 
며칠 전에 어디 뒀는지 한참 헤매던 라이덴 1 기판을 찾았다. (얼마 되지도 않는 기판이지만, 책이나 잡동산이들과 섞여 있어서 찾기가 쉽지 않다.) 그 참에 기판을 정리하며 아끼던 기판을 몇 개 꺼내서 소위 말하는 전기밥을 먹였다. 
 

아타리 제비우스 기판의 멋진 디자인


시간이 상대적으로 흐를리는 없는데, 이 시절은 참 길었고, 깊었고, 넓었다. 이후의 삶이 한참 더 몇 배나 많은데도, 내 안의 추억과 나의 구성 대다수가 이시절에 만들어진 것 같다. 
 
그건 내가 이후 나로서만 홀로 세상과 맞서 살아왔던 것과 다르게, 가족과 친구 심지어는 대상화한 수많은 물건들과 관계를 맺고 유대를 나누며 함께 만든 수많은 추억이 있어서 그런가 보다.
 
8비트가 1바이트가 되는 세상, 더 많이 압축하고 더 많이 생략해서 더 더 빠르게 가야 한다. 그러나 어쩌냐 나는 그 속도를 이젠 못 따라가겠다. 아니 따라갈 이유도 모르겠다.
 
그냥 여기서 나만의 방식으로 1980년대를 품고, 천천히 태양을 돌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