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9. 12. 09:53ㆍ오락실 기판
최근 전혀 추억에 없던 게임 두 개를 구매했다. 드래곤 블레이즈는 싸게 나와서 샀고, 헬 파이어는 우연히 들었던 BGM이 너무 멋있어서 구매했다.

드래곤 블레이즈는 이전에 했을 때도 느꼈지만, 사이쿄 슈팅의 정석에 약간의 탄막을 더했다. 그래픽 아트에 힘을 주며 세계관을 만들었는데, 아마도 건버드 시리즈처럼 더 이어나가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게임성만 따지자면 글쎄다,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특출난 면도 없다. 언제나의 사이쿄로 게임 진행방식, 컷신 구성조차 이전작과 차이가 없다. 스트라이커즈 1945 아니 사무라이 에이스, 아니 에어로 파이터 여기서 뭐가 나아진 건지 모르겠다. 당연히 스펙의 발전으로 기술적인 진화는 있지만, 모든 것이 데자뷔처럼 느껴진다.
사이쿄가 게임을 못만드는 건 아니었고, 언제나 늘 기본 이상임에도 단지 내 취향에 안 맞는 것일까. 사이쿄는 한국에서 특히 사랑을 많이 받았는데, 나는 늘 모르겠더라.
신기한 것은 이 게임이 벌레공주를 따라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내 착각이었다. 벌레공주보다 4년 먼저 나온 게임이었다. 두 개의 게임에서 뭔가 비슷한 느낌(맵의 구성 같은 것)을 받았는데, 그렇다면 벌레공주가 드래곤 블레이즈에서 약간의 영감을 받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사이쿄의 특징인 고속탄이 주를 이루는 벌레공주 오리지널 모드도 그 생각에 힘을 싣는다.
물론 벌레공주의 완성도는 넘사벽이고, 다 내 망상일 뿐이다. 그냥 그렇더라고...


헬 파이어는 토아플랜의 두 축이었던 유게 마사히로와 우에무라 타츠야 중 우에무라 타츠야의 작품이다. 둘은 비슷하면서도 좀 다른 작풍 혹은 음악성을 가졌는데, 하드 보일드한 세계관 속에서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같은 상쾌하고 상냥한 음악으로 극적인 시퀀스를 만들어 페이소스를 느끼게 하는 게 유게 마사히로라면, 우에무라 타츠야는 마치 애니메이션의 주제곡처럼 처음부터 곡에 이야기, 이미지가 실려있어서 듣는 순간 작곡가가 의도한 드라마틱한 감정을 그대로 따라가게 된다.
대표적으로 교교교가 유게 마사히로 풍이라면 바로 헬 파이어가 우에무라 타츠야의 음악성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헬 파이어를 메가 드라이브로도 가지고 있어서 아케이드 버전과 비교해봤는데, 아케이드의 원색적인 날 것의 맛이 어레인지 한 메가 드라이브 버전보다 훨씬 박력 있으며 그것이 작곡의 의도와도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게임 자체는 전형적인 외우기 슈팅 게임이다. 최초의 토아플랜 횡스크롤 슈팅 게임으로 서툰 부분이 있다. 순발력보다는 거의 경험으로 배워 나가야 하는 다소 불합리함도 보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컬트적인 사랑도 받을, 어딘가 나사가 풀린 혹은 개성 넘치는 게임이다.
몇 십년 전 게임을 마치 새로운 신작처럼 만나는 것, 나는 더 이상 시간과 경험의 흐름을 한 방향으로 국한하지 않는다. 그로 인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도 더 넓어진 것을 느낀다. 내 안에 비어있던 부분을 나만의 시선과 공부로 채워갈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다른 누군가의 말과 평가는 내가 가는 길에 소소한 그늘이 될 수는 있지만, 내 땀이 되지는 못한다. 내 눈으로 보고, 내 손으로 만지고, 내 다리로 걸어서 간다. 도착한 곳이 아무것도 없는 불모지라도 상관없다. 꽃을 피워야 한다면 피우고, 비워야 한다면 모두 내 손으로 비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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