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듀얼, 심심한 게임 매운 인생

2023. 10. 4. 12:15오락실 기판

 

기판은 버림 받아 동굴에 갇혀있다 나온 상태, 완전 새것.
모든 것이 양호.
이 정도면 먼지만 털자.
비행기와 바이크를 이용한 나름 야심찬 기획, 하나만 잘하자.
비행기가 발사하는 연사 3WAY가 이전 버전에서는 두 발 나갔다.
벽에 부딪혀도 죽지 않는 비행 파트, 너무 좋아.

 

나름 서비스 컷도 있다.

 
라스트 듀얼은 약 3년 전에 구매한 기판이다. 오락실 전성기라 할 수 있는 시기에 나온 슈팅 게임이었지만, 폭망 한 게임이라 시장에 보이는 기판의 양은 적어도, 비교적 싼 기판이었다. 
 
먼저 복사 기판을 구매했었다. 구동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그 시절에는 몰랐던 복사 기판의 이상한 부분이 눈에 띄었으나, 게임 플레이를 시작하니 그런 기분은 사라지고, 온전히 어린 시절의 나로 돌아갔다. 30년 만에 하는 게임임에도 본능적으로 무조건 사용했던 무기, 바로 연사 무기를 찾았다. 인기 없던 게임이라도 내게는 최고 제작사였던 캡콤 게임인 만큼 동네에서 가장 열심히 했었다. 아주 쉬운 게임이라 원코인도 별 문제없었고.
 
그래픽이나 사운드는 평범, 모든 부분에서 안정적인 완성도다. 지상전과 공중전을 번갈아 하는 구성이 참신했지만, 게임이 하품 나올 정도로 쉽고, 심심하다는 게 문제였다. 게임의 디렉터는 아이렘에서 문패트롤과 쿵후마스터를 성공시키고 캡콤으로 이적한 니시야마 타카시였는데, 트로이얀, 섹션 Z, 아레스의 날개, 스트리트 파이터 그리고 이 작품까지의 연이은 실패가 캡콤에서 입지를 줄여, SNK로 이적하는 이유가 됐을 거라고 생각한다. 
 
여튼 게임의 완성도는 썩 좋지 않지만, 그래도 캡콤 슈팅의 장점이 꽤나 녹아있어서 개인적으로는 좋아했다.
 
곰곰이 캡콤 슈팅 게임의 장점을 늘어놓자면, 제일 좋아했던 부분은 기체가 배경에 부딪혀도 죽지 않는 것이다. 오롯이 적기의 총탄을 피하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다. 두 번 째는 굉장히 일찍부터 게임 내에서 연사를 구현했다는 것. 버튼을 연타할 필요 없이 누르는 것만으로 상쾌하게 싸울 수 있다. 세 번 째는 실수로 한 두 대의 피격을 허용해도 버티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이를테면 건스모크의 말이나 사이드 암스의 합체, 1943 이후의 체력바를 이용한 방식등이 그렇다. 이 게임에서는 한 번의 피격으로 죽기는 하지만 아이템이 바로바로 나와서 게임 진행에 어려움은 없다. 
 
그렇게 복사 기판을 가지고 있다가 어느 날 굉장히 싼 가격에 정품 라스트 듀얼을 구매했다. 거의 복사와 차이가 없는 가격이었다. 그만큼 푸대접을 받는 게임이랄까.
 
그렇게 정품 기판을 구동, 테스트하면서 신기한 사실을 알게 됐다. 세상에 복사 기판과 게임의 구성이 다른 것이었다. 워낙에 열중해서 했던 게임이기 때문에 단박에 정품의 구성이 다르다는 것, 복사야 말로 내가 어릴 적에 즐겼던 게임이란 건 자명했다. 
 
복사에 약간의 글리치가 있거나 프레임, 느려짐에 차이가 있을 수는 있어도 구성이 다른 것은 신기했다. 그게 얼마나 다르냐면, 이전에 했을 때 내가 가장 좋아했던 무기가 정품에서는 연사가 안되는 후진 성능을 가지고 있고, 순서에 따라 다음에 나오는 별로였던 무기가 즐겨 쓰던 무기와 같은 연사 성능이면서 심지어 3way로 훨씬 더 좋은 것이었다. 그래서 한 참을 그 사실만 '신기하네' 하며 인지하고 있다가 최근에 포스팅을 결심하고 다시 플레이하면서 그 이유를 찾았다.
 
복사가 일부러 다르게 프로그래밍을 한 것은 아니었다.  어린시절 했던 복사가 일찍이 일본과 북미, 세계에 퍼졌던 오리지널을 카피한 것이 맞고, 새로 구매한 정품은 가장 나중에 북미에 다시 풀린 뉴버전이었다. 아마도 게임이 흥행에 실패하자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게임 조정을 하고, 무기 구성을 새로 해서 출시한 것 같다. 심지어 조작감 조차 다른데, 오리지널 구 버전이 빠릿하게 움직이는 반면, 뉴 버전은 관성이 느껴지는 무거운 조작감으로 전혀 다른 게임처럼 느껴지며 훨씬 어렵다. 난이도 역시 뉴 버전 쪽이 더 높은 것 같다.(이 부분은 딥 스위치 조정을 해가며 비교하지 못해서 정확하진 않지만, 정황상 그런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뉴 버전쪽의 완성도가 마음에 든다. 
 
이 작품을 끝으로 니시야마 타카시는 두 개 정도 시시한 게임을 더 만들고 캡콤을 떠났는데, 그 모양새가 별로 좋지 못했다고 들었다. 캡콤 제 2개발부의 인원을 거의 다 데리고 SNK로 가버렸으니 캡콤 사장도 열받을만하다. 그리고 아랑전설을 비롯 사무라이 스피릿, 킹오파94등을 만들어 이후 격겜 대전으로 캡콤을 들들 볶았으니 원은 풀었으리라. 
 
재밌는 것은 그런 그가 한 참 뒤에 스트리트 파이터4를 캡콤으로부터 외주 받으며 지금의 스파붐을 다시 일으켰으니 인생이란 참 알 수 없다. 
 
나 역시, 마지막 대결이 끝났다는 생각은 전혀 없다. 비록 무엇을 꿈꾸기에 좀 늦은 나이지만, 여전히 어떤 링 위에 올라갈 준비를 하고 있다. 볼썽사납게 져도 상관없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꿈꿔야 하고, 그 꿈을 위해 언제까지고 싸워야 한다.
 
맛있게 매운게 인생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