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상가를 다녀오면서

2023. 3. 26. 12:10생각

며칠 전에 대한민국에 남은 마지막 아케이드 성지라고 할 수 있는 대림상가에 다녀왔다. 몇 년 전에 아무것도 모르고 상경할 때와는 또 다른 기분이 들었는데, 처음 갈 때의 설레임 보다는 지는 해를 바라보는 쓸쓸함이 더 느껴졌다.

기판을 하면서 피로감 때문에, 당분간은 수리할 생각이 없었지만, 마침 용인에 갈 일이 생겨 겸사겸사 들렀다.

아카다, 콜렉터보단플레이어로란 카페 친구들을 만나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고, 그동안 미뤄뒀던 컨버전 발키리의 전설을 고쳐왔다. 처음 어썰트로 구매한 기판인데, 이베이 판매자가 조명을 교묘하게 조작해서 찍은 사진에 속아 샀던 고장 난 기판이었다. 어렵게 가지고 있던 기판들을 기워서 고쳤지만, 색이 하나 안 나오는 문제가 있었다. 아주 깔끔하게 수리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고쳤으니 됐다.

마침 근처에 있던 에어리어 88, 북미판과 함께 구동했는데, 우연히도 같은 1989년 게임이었다. 에어리어 88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보따리가 한 바다라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련다.  둘 다 멋진 게임이지만, 동 시기의 게임이라고 하기에 남코 시스템 2의 파워며 도발적인 게임성이 참 대단하다. 물론 뭐가 어찌 됐든 난 에어리어 88이 더 좋다. 예전 명절에 만나던 덕후 친구들과 술자리는 늘 지옥의 외인부대 이야기로 끝을 맺었다. 했던 이야기를 하고 또 해도 좋았다. 에어리어 88은 내게 그런 의미다.

다들 일정이 빠듯해서 회원들과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그래도 아무런 연고 없이 만나는 편안함이 있었다. 나는 서로와의 관계로 기쁨을 누리고 홀로는 살 수 없으면서, 늘 관계의 늪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모순적인 감정을 느낀다.

인간의 온기를 그리워하며, 서늘한 고독을 함께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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