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1. 18. 16:05ㆍ생각

몇 년 전 유튜브에서 외국인 친구가 카메라를 소개하는 영상을 봤다. 전문적인 리뷰는 아니었고, 브이로그처럼 아주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그 카메라가 자신들의 일상을 기록하는데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이전에 쓰던 카메라를 떨어뜨려 고장났지만, 너무 좋아서 하나 더 이베이에서 구입해 쓰고 있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스마트폰 카메라의 놀라운 성장과 맞물려 디지털카메라는 이제 다 죽었다고 생각했다. 필름 카메라가 사장되고, 아이팟 같은 음악 플레이어가 사라지고, 미디어 플레이어 같은 것도 다 사라졌는데, 불편한 디지털카메라를 아직도 쓰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런데 말도 안 되는 질병 때문에 지구가 정지하면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가치를 찾기 시작한 것 같다. 무엇보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무형의 물질들을 믿지 못하게 되고, 손에 잡히는 유형의 무엇인가를 갈구하게 됐다. 특히 디지털로 경험하는 게 진짜였던가?라고 반문하며 의심하고, 이전에 했던 일들을 비교하고, 되새기며 아주 작고 미세한 장점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 미세한 차이, 정밀 장비, 이론으로만 존재하는 간극안에 감성이 살아있었고, 그 길을 따라가면 추억이 존재했다.
디지털 시대라고 추억이 없겠냐만, 나처럼 아날로그 시대를 거쳐온 사람들이 세상에는 더 많았는지,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운 것들에서 의미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세상은 이전보다 불완전해도 좋으니, 직접 만지고 부딪혀서 스스로 자신만의 세상을 완성해 가자는 풍조가 늘고 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진정한 화해랄까.
그렇게 유튜브에서 본 카메라를 맘에만 두고 있다가 문득 생각나서 찾아봤더니 가격의 상승이 가팔라서, 이젠 안 되겠다 싶었다. 부랴부랴 무지성으로 산 거라 이 시리즈의 신상이 뒤로 두 개나 더 있다는 것, 내 의지에 더 부합할 다른 카메라가 필름부터 디지털까지 무궁무진하다는 것도 구매하고 공부하면서 알았다.
뭐 어쩌겠는가, 내 차가 페라리가 아니라서 슬펐던 적이 있었나. 페라리가 꿈인 적도 없었다. 그러나 달리고 싶었던 적, 누군가를 위해서 어떤 차라도 필요한 적은 있었다. 필요한 걸 구하고, 만족하며 달렸다. 나도 그 서양친구처럼 사랑하는 사람의 인생과 내 흔적을 내식으로 남기고 싶다.
그럴 수 있다면, 그걸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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