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라에몽, 나의 동짜몽!

2024. 11. 20. 09:59책들

 

일본의 50주년 기념판을 구하고 싶었지만, 이것도 고마웠다.
좋아해. 도라에몽.
당근으로 구매했는데, 만나 보니 판매자가 초등학생...
일본에서 구매한 원화집, 내가 정말 좋아하는 에피소드 원고 한 컷을 복사한 카드가 들어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발행했다.

국민학교 시절 가장 많이 다시 빌려 본 만화였다. 신기하게 지금의 소년 점프 단행본 사이즈에 일본식 우철 제본으로 나왔다. 하도 많이 봐서 지금도 눈에 선한, 전권 7권. 분명 도라에몽이 떠나면서 끝나는데, 정말 펑펑 울었다. 7권 밖에 안됐지만, 동짜몽의 세상은 어린 시절 상상할 수 있는 그 모든 것이었다.

나이를 먹고 성장하면서 동짜몽(동글동글짜리짜리몽땅몽땅)의 원래 이름이 도라에몽이란 것과 일본에서 국민적 인기의 캐릭이란 것을 알았다. 분명 7권으로 끝난 동짜몽인데, 어떻게 이후에 그 많은 단행본이 나온 걸까? 그 뒤에 어떤 이야기가 이어지는 걸까?

군대를 제대하고 바로 서울에 올라가서 들른 곳이 두군데,낙원상가에 기타를 사러 갔고, 동대문 만화 총판에 도라에몽을 사러 갔다. 낭만이었다.

총판에 들러 노란색 바탕에 하얀 책을 잔뜩, 도라에몽만 30권이 좀 넘었던가. 우시오와토라 단편집 같은 거랑 몇 개 더 해서 집으로 택배로 보내달라고 부탁하고, 근처의 중국집에 가서 친구와 술을 진탕 마셨다.

서울에서 일을 모두 마치고 집으로 내려가 도라에몽을 꺼내 읽었다. 7권까지 가는 과정이 모두 기억났다. 어릴 적에 동짜몽을 읽을 때 우리와 다른 정서의 생경함을 신선하고 좋다고 느꼈는데 여전했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만화는 나를 어린 시절로 끌고 간다. 그리고 드디어 7권, 역시 내가 기억한 게 맞았다. 모든 게 맞았다. 그럼 8권은 뭘까?

세상에, 정말 도라에몽 다운 발상으로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이어졌다. 7권의 그 먹먹함이 전혀 아깝지 않을 만큼 반가운 전개다. 찾아보니 일본에서도 인기가 없어 7권으로 끝났다가, 만화영화와 함께 인기를 끌며 재연재를 시작했다고 한다. 전설적인 히트작에게도 이런 사연이 있다는 게 놀랍다.

뒤에는 역시 도라에몽이라고 할 만큼 단 하나의 에피소드도 지루하지 않았다. 점잖게 웃고 울게 만드는 행복한 작품이다. 그렇게 도라에몽은 다시 내게 돌아왔지만, 그 이후에 나오는 단행본은 구매하지 않았다. 다른 일에 빠지고 바빠서 못 산 것도 있지만, 번역이 너무 엉망이어서 도무지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 시절의 일본 번역본들은 특히 함량미달이 많았는데, 당장 기억나는 것만, 시끌별 녀석들이 그랬고, 메종일각도 그랬다. 하여튼 그런 수준 낮은 번역 때문에 차라리 원서를 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렇다면 급할 게 없었다.

그러다 또 십수년이 흘러 일본에서 도라에몽 50주년으로 이런저런 기념 물건들이 나오는 것을 우연히 알고, 다시 동짜몽이 보고 싶어졌다. 많은 책과 만화를 이사하면서 버릴 수 밖에 없었다. 500권도 더 넘게 엄청 난 양을 버렸다. 그런 난리통에 집이 어려워지고 힘든 와중에도 차마 버리지 못하고 가지고 다닌 게 도라에몽이었다. 그런데 박스에 넣어서 다니는 바람에 어디에 있는지 아직도 꺼내지 못했다. 무엇보다 몇 권 빌까봐 그게 두려워서 못 꺼내겠다. 

어느 날 밤 어쩌다 와이프에게 이 이야기를 해줬다. 내가 왜 도라에몽을 좋아하는지 이제야 알았다며 와이프가 웃더라.

용케 도라에몽 테마 걸작선이 국내에서 발행됐다. 바로 구매했지만, 이건 나를 위한 책이라기보다는 우연히 이 집에 들를 조카나 아이들을 위한 책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이 이 책을 읽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책이 닳고 달아 너덜너덜해져도 괜찮다. 도라에몽은 늘 그런 마음으로 친구를 대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