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블라블과 버블보블, waves of inspirations

2025. 5. 16. 11:47생각

토이팝 기판을 구매하고 리블라블이라는 1983년에 출시한 게임의 남은 기판을 활용하기 위해 만든 게임이란 사실을 알았다. 리블라블? 스쳐가며 몇 번 본 적 있었지만, 정확하게 어떤 게임인지 몰랐다. 자료를 뒤질수록 흥미로운 전개가 펼쳐졌다.
 
리블라블은 팩맨으로 유명한 거장 이와타니 토오루의 작품이었는데, 국내와는 달리 본토 일본에서는 나름 확고한 팬층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코 황금기의 오락실 게임은 국내 오락실에는 거의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잘 모르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유튜브 에디션으로 게임을 감상하면서도 도무지 알 수 없는 난해한 게임이었다. 
 
여튼 게임을 계속 감상하면서 머릿속에 작은 생각들이 고리에 고리를 이루며 이어지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끝에 이르러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오락실 게임인 버블보블에 도착했다. 
 
libble rabble, bubble bobble 제목에 이미 힌트가 있었는데 말이다. 
 
리블, 라블은 트윈스틱 게임으로 유저가 조정하는 왼쪽 left와 오른쪽 right의 커서 모양의 캐릭터 이름이었다. 이것은 게임 버블보블의 제목이 버블과 보블이라는 캐릭터 이름인 것과 같다. 
 
게임의 목표는 두 개의 커서를 이용해 화면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을 땅따먹기 방식으로 가두는 것인데, 버블보블에서도 거품 방울을 쏴서 적 캐릭터를 가두는 것으로 이 역시 비슷한 개념이다.
 
그런 의문속에서 가장 놀랐던 것은 적 캐릭터였다. 
 

내게 없는 기판이므로 유튜브에서 기판 플레이하는 것을 발췌.
똑같진 않지만 굉장히 닮은 캐릭터.

그렇게 기시감을 느끼는 도중에 이어지는 익숙한 이미지들. 도망가는 특정 적을 가두면 버블보블의 보너스 알파벳처럼 화면 상당 중심부에 한 글자씩 채워지는데, 그중에 등장하는 영단어 RAINBOW와 무지개 퍼포먼스, 어째서 버블보블의 다음 작품 제목이 레인보우 아일랜드였는지 번개를 맞는 것 같았다. 
 

버블보블의 다음작인 레인보우 아일랜드를 연상시킨다.
레인보우 아일랜드 게임 화면.

리블라블의 신기한 게임성에는 기판에 특화된 bgm을 빼놓을 수 없다. 아름답고 정겨운 음악이 일본 올드 게이머들에게 역대 최고의 사운드트랙으로 회자된다. 위의 기판을 구동한 일본인 유튜버도 특정 음악(bridal, 결혼행진곡)을 기판의 음원으로 듣고 싶어서 플레이한다고 커멘터리 했다. 이 또한 국내에서 bgm으로 더 사랑받았던 버블보블과 닮았다. 
 
당연히 버블보블이 리블라블을 베꼈다는 말은 아니다. 나는 어디서 버블보블 같은 괴물이 갑자기 나타날 수 있었을까 늘 궁금했다. 미츠지 후키오가 천재라서 그냥 하늘에서 뚝하고 떨어졌다고?
 
그런데 여기 답이 있었다. 그것은 당시 세계 톱을 달리던 일본 아케이드 천재들의 유산이 있어서 가능했다. 위대한 선배가 만든 놀라운 작품에서 자신만의 철학과 비전을 발견하고 새롭게 해석한 후 대답으로 또 다른 걸작을 내놓는다. 이러한 영감( inspiration )의 끝없는 웨이브가 일본을 그때부터 지금까지 게임 초강국으로 만든 것이다. 
 
문화산업의 모든 피조물들은 도전과 응전의 산물이다. 그리하여 영감과 오마쥬, 표절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한다. 그 구분은 오로지 진지한 소비자만이 할 수 있다.

그래서 위대한 유산은 말 없이 서있다. 결국 자신을 비켜 갈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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