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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 보이, 원더 이어즈
세가의 원더보이 1은 시대를 초월하는 작품이다. 그야말로 원더풀! 어릴 적 일요일 늦은 저녁에 오락실에 들르면, 언제나 한 귀퉁이에서 가동되던 게임. 물론 나도 많이 즐긴 게임이지만 의외로 매니악한 난이도여서 원코인을 꿈조차 꿔본 적은 없다. 많은 아이들이 달라붙어서 한 게임은 아니지만 근 5년 가까이를 오락실에서 빠지지 않았던 스테디셀러다. 기판을 시작하며 세 손가락 안에 갖고 싶었는데, 구하고 가동해 보니 과연 대단한 게임. 지금 해도 게임의 재미가 하나도 낡지 않았다. 처음엔 복사를 두 번 째는 심플한 한 장짜리를, 마지막으로 이 녀석을 미국에서 구매했는데 40년 가까이 지난 물건이라 접촉에 문제가 있어 그래픽에 약간의 하자가 있지만 급하게 고칠 생각은 없다. 원더보이와 나는 그렇게 함께 늙어간다.
2022.02.14 -
버추어 파이터 4 파이널 튠드, 그 마지막 불꽃
버추어 파이터 3 tb가 실패한 게임이었나? 당시 내 삶을 태풍처럼 잡아먹은 게임이라 적어도 내겐 실패란 말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세간의 평가는 그렇지 못했는데, 같은 넘버링이었던 철권 3의 대중적인 성공 때문이었을까. 버파 4는 그런 상황에서 버파 3의 유전자를 확실히 지우고 나왔다. 버파 2의 실질적 후속작 버파 4는 그래서 2보 전진 1보 후퇴다. 최초 국내 오락실에 입점했을 때 서울 어느 오락실까지 찾아갔던 기억이 있다. 수많은 국내 유명 플레이어들이 동전을 쌓아놓고 있어 한 판을 잇기도 힘든 상황, 어쩌다 한 판을 해도 버파답게 순식간에 끝났다. 그 때 그 오락실의 적막과 긴장을 다시 느낄 수 있을까. 젊어서 몇 번을 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그 시절 그립다. 게임은 당시 국내에서 거의..
2022.02.13 -
버추어 파이터 3, 더 몬스터
세가의 버추어 파이터는 게임업계를 뒤집어 놓았다. 매 작품이 대단했지만, 세가의 전성기라면 역시 모델 3를 사용해서 만들었던 버추어 파이터 3를 꼽을 수밖에 없다. 1과 2의 변화가 성별이 다른 것처럼 보였다면 3는 종의 변화, 그야말로 신세계를 열었다. 당시 그래픽은 말할 것도 없고, 버파 역사에서도 가장 큰 야심을 가졌던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단지 캐릭터의 진화에 그치지 않고 환경의 진화를 이뤄냈다는 것에 있다. 고저차가 있는 것은 물론 다양하고 특색있는 스테이지 구성은 지금도 따를 격투 게임이 없을 정도다. 내게는 20대의 한창을 오락실에서 살게 했던 게임인데, 여기서 만났던 사람들과 이런저런 사연도 참 많았다. 이때만 해도 게임을 분석하지 않고 경험에 의존하는 바람에 높은 경지까지 오르..
2022.01.12 -
잃어버린 책들을 회상하며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책을 잃어버리는 경험을 할 것이다. 책을 잃는 것이 내 신체의 일부를 잃는 것만큼이나 고통스러울 때도 있었다. 이제야 읽을거리 볼거리가 넘치고, 어지간한 것들은 디지털로도 동시 발행되는 시대라 덜 아쉽지만, 내가 한창 책을 모을 때는 책이란 지식 그 자체였고, 책의 소유란 지식의 소유랑 같은 의미였다. 그래서 더 책을 모으는 것에 열중했는지도 모르겠다. "너 그거 읽어봤어?" 상대의 말문을 막는 깜찍한 즐거움. 책을 모으다 보면 어떤 책이 귀하고 흔한지 알게 되기 때문에 책은 대화에 충분히 비열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모든 책을 다 모을 수 없는 우리는 각자의 책을 자신의 서재에 꽂았고, 비슷한 부류의 사람을 만나며 다양하고 신기한 경험에 대해 늘어놓곤 했지. 참 ..
2022.01.12 -
제비우스, 제 3종 근접조우
오락실이란 곳을 회상하면 여러 가지 상념들이 떠오르기 때문에 첫 단추를 채우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 제비우스를 빼놓고는 아무 이야기도 할 수 없겠지. 제비우스를 처음 까치발로 봤을 때 그 신비로움. 지금 봐도 아름다운 그래픽, 절제되고 감각적인 사운드다. 나즈카라는 인류의 거대한 몽상에 그려진 슈팅게임. 어린 내겐 게임이 품고 있는 세계관이 거대해서 쉽게 동전을 넣지 못했다. 느린 기체의 움직임과 죽었을 때의 상실감을 이해하기 힘들었지. 오락실이란 제비우스 그 자체이다. 유년기의 풀기 힘든 수수께끼이며, 벗어날 수 없는 환상의 원형이랄까. 남코라는 거대한 산이 만든 걸작, 제비우스. 지금 시대에도 유효할 뿐 아니라, 앞으로도 영원할 제3종 근접 조우, 금자탑이다.
2021.04.18 -
긴 강과 푸른 숲
꽤 긴 시간을 놀다 보니 이런저런 추억들이 많이 쌓였다. 그것들을 즐기는 순간에는 다른 것을 생각하지 못할 만큼 미쳐 지냈는데, 자꾸 그것들이 물속에서 움켜쥔 모래처럼 기억에서 사라져 가는 것이다. 크게 의식하지 않다가 어느 날인가 꽤나 높은 곳에서 긴 강과 푸른 숲을 보다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알 수 없는 감정이 소용돌이 쳤고, 공포 속에서 현기증을 일으켰다. 모두 사라지기 전에 진지하게 내 속에서 다시 나를 찾아야겠다.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2021.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