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실 기판(30)
-
달인왕, 장인이 꾸는 꿈
토아플랜 게임을 그닥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그만큼 덜 즐겼고, 잘 몰랐다. 그러나 오락실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토아플랜의 업적은 쉽게 넘어갈 수 없기에 교양의 차원에서라도 경험하고 싶었다. 다행히 최근 M2가 토아플랜 라이센스를 구매해서 훌륭하게 이식해주기 때문에 기다리면 해결될 일이었지만, 역시 호기심이란 무서운 것이다. 절대 싸지 않은 가격에 달인왕을 구매했다. 해외의 가격과 국내 판매가를 모두 고려했고, 비싼 만큼 까다롭게 고를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발품을 팔고, 머리를 굴리고, 네고를 하는 시간에 차라리 조금이라도 더 즐기는 게 낫다는 게 최근의 소신이다. 달인왕이 마음에 남았던 것은 가정에서 기판을 구동하는 한 일본 유저의 동영상을 보고 나서였다. 그전까지는 한 번도 끌린 적이 없었는..
2023.03.03 -
wiz, 마법 기억하고 있습니까?
1984년 언저리 겨울을 생각해본다. 그 시절의 내게 세상이란 집, 학교, 오락실, 만화방을 제외하면 모든 곳이 미지의 영역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많은 눈이 내리면 내가 걸을 수 없는 곳 만큼 세상은 더 신비롭게 느껴졌다. Wiz는 그런 겨울 날, 오락실에 들어가 몸에 내린 눈을 털고 언 손을 불면서 구경하던 게임이었다. 잘하던 게임은 아니었다. 당시 쏘고 피하는 정도의 게임성에 익숙했던 내게, 횡스크롤로 슈팅을 하며 셀렉트 버튼을 사용해서 마법책에 있는 마법을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일은 어려웠고, 어떤 선택을 해도 개운하지 않았다. 그래도 신기한 캐릭터와 세계관, 중독성 넘치는 음악 때문에 갤러리가 되어 뒤에서 즐겁게 구경하곤 했다. 생각해보면 나는 좁은 선택지에서 어떻게든 살아남는 경험을 좋아하고 잘..
2022.11.13 -
flash gal, 오! 원더 우먼
플래시갈은 어릴 적 오락실에서 쉽게 볼 수 있던 게임이었다. 당시로서는 하이레그의 나름 예쁜 아가씨가 나오는 게임이었지만, 에로틱하기보단 코믹한 작품이었다. 에너지바를 채용해서 몇 대 정도 맞아도 상관없는, 플래시갈을 직접 조종하는 횡스크롤 액션 게임 방식과 한 방에 죽는 바이크, 배, 헬기를 타는 다소 높은 난이도의 슈팅 게임 방식을 동시 채용해 플레이 타임을 조종했다. 시종 즐거운 음악에 뜬금없는 적의 난입과 유쾌한 공격으로 이 게임에 대한 추억은 산들바람같다. 그래서인지 이 게임을 치열하게 한 기억은 없다. 그냥 오락실에 가서 할 게임 없을 때 부담 없이 동전을 넣었다. 제일 친한 친구는 아니지만, 만나면 적당히 즐거웠던 친구랄까. 발매는 세가에서 했지만, 실 게임의 제작사는 큐고인데,이 회사가 이..
2022.11.02 -
배틀 서킷, On your marks
기판을 처음으로 구매할 때 이야기다. 나는 첫 기판으로 극상파로디우스를 사고 두 개의 기판 중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둘 다 cps2 기판이었는데, 하나가 에일리언대프레데터 나머지가 배틀 서킷이었다. 에일리언대프레데터는 대학시절에 즐겼던 게임이고 당시 벨트스크롤의 정점에 있는 게임이었지만, 나는 해본 게임보다는 못해봤던 게임을 더 원했기 때문에 어쩐지 배틀 서킷으로 자꾸 마음이 기울었다. 그러나 결국 미인 린 쿠로사와가 있는 에일리언대프레데터를 먼저 구매했다. 당시 그다지 기판을 구매하는 사람이 없어서 나중에 구매해도 되겠다 싶었지. 그렇게 놓치곤 3년이 흘러도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기판이었다. 드물거나 비싼 기판은 아니었는데, 나오는 매물마다 조금 늦어서 놓치다 보니 어느새 cps2 기판도 끝물이 돼서 ..
2022.10.08 -
로스트 월드, 포가튼 메모리즈
고등학교 때 였을 거다. 그 시절에는 학교에 매여있어서 오락실을 자주 가지 못하고, 어쩌다 주말에 가서는 코인 러시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런 내가 오락 좋아하는 걸 한 녀석이 알고는 말을 걸었는데, 녀석은 속초보다도 더 촌에서 살다가 나름 유학온 녀석이었다. 그 놈 왈 자기 사는 동네에 좋은 오락실 있다며, 자신도 어릴 때 부터 오락 좀 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원래 약간 허풍이 있는 친구였는데, 알고 봤더니 아버지가 의사였고 나름 사는 집안 녀석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게 가정용 콘솔 이야기도 늘어놨는데, 워낙 관심이 오락실 게임에만 있고, 콘솔 게임을 얕잡아보던 시절이라 무시했다. 여하튼 녀석은 나랑 친해지고 싶었는지 자기 동네에 놀러 가자며, 그 오락실에는 큰 캐릭터에 버튼이 여섯 개나 되는 게..
2022.09.27 -
테라 크레스타, 미지의 지구로…
국내에는 독수리 오형제로 불렸던 유명 게임이다. 독수리 오형제도 실은 오형제가 아니듯 이 게임도 버젓이 테라 크레스타라는 원제가 있다. 대히트작이었고, 이로 인해 제작사 니치부츠는 이후 클론을 양산했다. 특유의 비비드한 색감(특히 노란색이 인상적이다), 챙챙거리는 사운드, 적들의 프리키하고 필사적인 움직임으로 볼륨 자체는 크지 않아도 완급 조절이 좋아 쉽게 질리진 않았다. 하지만 이 작품이 문 크레스타 후속작인지는 몰랐다. 기억의 저편, 무의식의 어딘가에 아빠와 여행하며 차를 기다리다 지루해하는 나를 터미널 근처 오락실로 처음 데려갔을 때를 떠올린다. 그 날 눈을 끌었던 게임이 문 크레스타였다는 것을, 테라 크레스타를 찾다가 알게 됐다. 혼자 오락실을 다니게 됐을 즈음에는 이미 문 크레스타가 사라진 후였..
2022.08.26